달려가는 현장

경찰은 부르기만 하면 즉각 달려오는 사람이 아니다

윤태 2009. 6. 22. 07:14



술취해 쓰러져 있는 사람, 몸에 손대면 소매치기로 오해받을까
아저씨 죽었냐며 꼬치꼬치 묻는 아들 녀석

후덥지근한 21일(일요일), 밤 9시경, 성남 모란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두 아들과 함께 버스 정류장 주변으로 산책을 나왔다. 아내와 처제는 여전히 식사중이었고 칭얼거리는 두 녀석을 데리고 나왔다.

우체국 앞 공터에서 흔한 풍경을 목격했다. 술에 취한 사람 혹은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누워있었다. 다섯 살배기 아들 녀석이 이 아저씨 왜 그러냐며 물었다. 미동도 안하고 있으니 죽었냐고도 물어봤다. 술을 많이 드셔서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해줬다.

아들과 나는 그분을 깨우기 시작했다. 아들 녀석은 나를 따라 계속 아저씨를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허사였다. 혹시 주머니에 휴대폰이라도 있으면 번호 확인해 집에 연락을 해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소매치기로 오인받기 십상이라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계속 깨우다보니 노숙자는 아니고 건설, 인테리어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같았으며 술 냄새가 진동했다. 안경과 가방은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119를 부를 상황도 아니고 좀 난감했다.

좀 주무시다 깨시면 될 것 같아 그 옆에 있는 분수대에 가봤다. 물이 나오지 않아 돌아온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누워있는 아저씨와 또 마주쳤다.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고는 지나갔다. 아들 녀석이 아저씨 죽었냐고 또 물었다. 그냥 지나쳐가야 하나 무슨 조치를 해야하나 고민됐다. 아들 녀석이 보고 있다. 보고 들은 한 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시기이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114에 문의해 가까운 파출소에 전화를 해볼 참이었다. 바로 그때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오셨다. 인근 지구대(파출소)에 신고를 했다고 했다. 아주머니 남편도 술 때문에 이런 경우가 종종 있어 남일 같지 않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했다.

아주머니와 나, 아이들 둘이 그 자리를 잠시 지켰다. 5분 정도 후 나이 지긋한 경찰 한분이 오셔서 깨워도 보고 소지품도 뒤져봤다. 역시 허사였다. 지긋한 경찰 분은 어딘가에서 급하게 연락을 해 이곳 현장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담배 한대를 물어들었다. 돌 의자에 앉아서.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은 취한 아저씨. 어찌해야하나 고민하다가..


-파출소장의 애로사항 “전화 받고 달려가면 강아지 소리 때문에 신고”-경찰력 낭비

취객 내버려두면 “경찰 놈들이 뭐하는 거야?” 며 비난...

이분은 인근 지구대 파출소장이라고 했다. 지구대에 여직원 하나 남겨두고 신고 받고 이곳으로 왔단다. 인력이 달리니 파출소장이 직접 나온 것이다. 경찰로써의 애로사항을 잠시나마 들을 수 있었다. 아래 내용은 파출소장이 나와 아주머니에게 하소연하다 시피 한 말이다.

술 취한 분들 때문에 출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경찰력 낭비다. 이 시간에 강도, 절도, 폭력 등 강력범죄 현장에 나가야 하는데 이런 데를 나오다보니 정말 필요한 곳에 못가는 경우가 있다. 가뜩이나 경찰 한명당 시민들 치안수요가 엄청난다.

그렇다고 신고를 받고 가만있을 수도 없다. 저 사람 저렇게 누워있는데 가만 두면 ‘경찰 놈의 새끼들’이 뭐하는데 저런 사람을 안 돌보고 그냥 내버려두냐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지구대로 우선 데려간다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혹 심장마비나 자해 등 기타 문제가 발생하면 경찰 책임으로 돌린다. 그냥 방치할 수도 없고 손을 써도 표시도 안나고...

우리 지구대가 관리하는 구역이 상당한데 경찰력은 겨우 10명이다. 모든 현장을 다 쫒아 다니기 힘들다. 신고 받고 출동해보면 강아지 소리가 시끄러워 주민들끼리 다투다 경찰을 부른 경우도 있다. 허탈감마저 든다. ‘뭣해서 부르고, 또 부르고’, 개인들끼리 해결해야하는 것들에 경찰들이 출동한다. 정작 급한 곳은 못가고 이런 곳에 출동한다는 건 낭비이고 시민들도 이 부분에 대해 자각을 해야 한다.

사실 이런 술 취한 분들도 두어 시간 이 상태에서 자고 술이 깨면 귀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다만 아주머니와 나는 밤에 비도 올 날씨이고 소매치기나 다른 해를 입을까 싶어 경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설명했다. 파출소장도 이 부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3명의 건장한 경찰이 왔다. 파출소장 말로는 사람이 없어 다른 곳에서 지원형태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누워계신 아저씨를 일으켜 세우고 좀 심하게 깨웠다. 약 30여분동안 경찰과 취한 아저씨는 밀고 당기기를 했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가족도 통화했다. 가족도 손쓸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쉼터에서 생활하는 것 같은데 그 사정도 여의치 않은 듯 했다.

아저씨의 정신이 비교적 말짱해졌다. 굳이 파출소로 갈 필요까지 없어졌다. 나는 경찰에게 내 연락처를 줬다. 경찰은 이곳에 더 있을 거면 이 아저씨를 좀더 지켜봐달라고 했다. 내가 한 시간 넘게 그 현장에 있었으니까.

결국 이 아주머니 신고로 경찰이 오긴했는데...인력이 없이 파출소장이 직접 나왔단다.


일부 비리 경찰 때문에 전체가 욕먹는다.
“경찰이 그래서야 되느냐”는 인식도 싸잡아 생각하는 것

늘 나오는 이야기다. 경찰들의 비리. 돈받고 사건을 무마해주거나 경찰임을 내세워 권력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심지어는 경찰이라는 신분을 잊고 경찰비리가 아닌 일반 강력범죄를 저질러 특수한 직업군에 대한 도덕성 문제도 종종 대두된다. 이럴 때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이 그래서 되느냐’는 비난이 빗발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 혹은 소수의 문제점을 전체로 확대해 생각하거나 전부다 그럴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경우가 있다. ‘경찰이 그래서 되느냐’라는 인식자체에 싸잡아 혹은 몽뚱그려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보통의 대부분의 경찰 개개인들은 고생이 많다. (전투경찰의 공권력 부분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음. 그건 경찰력 행사에 따른 경찰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이지 전경 개개인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경찰력으로 적지 않은 시민들의 치안을 봐야 한다는 게 현실이다.

경찰은 대리운전이나 소방차처럼 전화하면 즉각 달려올 수 없다. 이미 다른 현장에 출동해 있으면 그 건이 해결되고 나야 현장에 출동할 수 있다. 경찰 인력의 심각한 부족에 대해선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지 않고 ‘늑장 출동’ 이라며 비난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번 참에 수많은 고찰들의 애로사항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다섯 살배기 큰 녀석이 엄마에게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들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했다. 술마시는 건 자유지만 저렇게 심하게 마시면 안 되고 경찰들이 많이 고생한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만약 그 취한 아저씨를 그냥 지나쳐왔다면 아들녀석은 뭐라고 생각할까? 아마 쓰러져 있는 사람은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걸로 배우지 않을까 싶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있다. 전화기든 신분증이든 내가 확인한다고 하면 소매치기로 오인받을 것이다.


네명의 경찰이 출동해 결국 해결이 되긴 했지만 적지않은 시간 경찰력을 낭비한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