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교사의 학습일기

공부 잘하는 아이 시골로 보내는 이유

윤태 2010. 7. 19. 07:33

그 친구가 곧 이사할 집을 인공위성 지도로 찾아봤습니다. 남한강 바로 인근입니다. 학교는 바로 강가에 있습니다.



저는 초중등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서토론 수업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독해력, 사고력, 이해력, 글쓰기 표현력 등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지 어떤 부분이 떨어지는지도 대략 알 수가 있습니다.

제 수업을 받는 아이 중에 초등 2학년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제 수업은 물론 학교 공부도 뛰어나게 잘하는 친구입니다. 독해, 사고, 이해, 표현력 등등에서 잘한다 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입니다.

얼마 전 수업들어가기 전 이 친구 어머니를 잠깐 뵈었는데 8월 중순에 이사 가신다고 하시더군요. 처음엔 당연히 교육열이 높은 분당이나 서울쪽으로 이사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잘하는 공부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 부득이 이사하게 됐구나 생각했습니다.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분당이나 서울이 아닌 경기도 양평의 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시골의 전원주택으로 간다고 말이죠. 아이가 토끼, 강아지 같은 것을 기르고 싶다고요.

그 어머니께서 알려주신 주소지를 인공위성 지도로 찾아보니 집에서 100미터 코앞에 그림 같은 남한강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강 한가운데 섬도 보였습니다. 꿈속에라도 가고 싶은 휴가지, 휴양지 혹은 자연 속에서 사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경기도 양평하면 떠오르는 것이 드라마 <전원일기>가 떠오를 정도로 자연을 생각하게 되는 곳입니다.

전학하게 될 학교 홈페이지도 찾아봤습니다. 2학년은 한개 반인데 7명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가 가게 되면 8명이 되는 것이지요. 전교생은 불과 60여명이었습니다. 강원도 오지의 분교 형태에 비하면 많은 수지만 전교생이 천여 명이 넘는 도시의 학교에 비하면 적은 수입니다.  한 학년이 7명이면 교사와 아이들이 한 가족처럼 오순도순 수업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도시의 많은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관리, 통제하기 위한 그런 수단은 이곳 학교에서 필요하지 않을 듯 합니다. 강원도 오지 마을 천혜의 비경이 있는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몇 안 되는 제자들과 서울에서 부임해 간 교사와의 돈독한 정을 쌓아가는 영화 <선생 김봉두>를 보는 듯 합니다.

학원도 없고 학습지도 들어갈 수 없는 곳, 사실 처음에는 공부를 매우 잘하는 친구다보니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부모님께서도 그곳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하지만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친구 부모님이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자연속에서 사는 즐거움이나 혜택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문화, 문명 등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 아니, 그것들로는 절대 심어줄 수 있는 그 무엇을 남한강 자락의 자연이 가득 채워주고도 철철 넘치게 해줄 것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학업보다 무엇이 선행돼야 할지, 어떤 것이 자녀를 행복하게 하는 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 친구 부모님...하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제게도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라고 말씀하시지만 정말 잘하고 계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원주택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 다 가르치고 나이 들면 귀향, 귀촌 등을 통해 전원주택에서 텃밭 가꾸고 자연 속에서 사는 유유자적한 삶 말이죠. 이렇게 말씀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많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익숙해져 있는 도시의 삶 속에서 아등바등하다가 죽어서나 고향산천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죠. 경제적 여유가 되는 전원주택 장만해놓고 수시로 드나들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에 이사하는 그 친구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 그런 ‘여유’를 부르는게 아닙니다. 순전히 아이를 위한 일이죠.

늘 생각 속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을 과감한 결정으로 최대한 어린나이에 경험하게 하고 그것이 향후 아이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는 부모님. 뜨거운 용광로 같은 교육열에 동참하고 그 뜨거운 열기로 비지땀을 흘려야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대부분의 학부모들보다 강아지, 토끼 키우고 싶다는 아이의 소박한 바람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이 친구 부모님에게 한 표를 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선생 김봉두> 처럼 아이들과 교사의 관계가 돈독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