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조각 모음

내가 베푼 호의, 상대방이 부담스럽다니...

윤태 2010. 8. 30. 06:55


호의 생각해 받은 쇠고기 먹고 배탈 났다면?

예를 들어 아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쇠고기 다섯 근을 사준다고 칩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이고, 괜찮습니다”하며 사양할 겁니다. 그러나 계속적인 호의에 여러분은 매우 미안해하며 결국은 쇠고기를 받게 될 겁니다. 그렇게까지 호의를 베푸는데 너무 거절해도 예의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비싼 쇠고기를 다섯 근씩이나 사주시다니…”하면서 말이죠.

고마운 마음에 또 사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그 날 당장 쇠고기 요리를 해먹겠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쇠고기가 이미 미생물에 오염이 됐고 이를 제대로 익혀먹지 않은 탓에 식중독에 걸린 겁니다. 며칠동안 입원하고 갖은 고생을 하고 난 뒤 여러분은 한번쯤 생각하게 될 겁니다.

배앓이 하느라 고생한 지난 며칠, 적잖게 들어간 병원비며, 회사에 못 나가 장기근속상 받는데 지장이 있을까 등등등...(상황 따라 다르겠죠)

이걸 누구한테 따질까? 정육점 주인? 아니면 고기 사준 사람? 고기 사준 사람한테 따질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육점 주인한테 가봐야 보상은 못 받을 것 같고요.

위에 설정된 상황은 어디서 많이 본 듯 합니다. 지난 2008년에 종영한 ‘솔로몬의 선택’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네요 ^^

만약 여러분이 실제로 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내가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던 ‘제공하는 사람’이든 간에 그것을 떠나서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 때 한번쯤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차 태워주겠다는데 극구 사양한 부장님, 왜?

전에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호의를 베푼 것인데 따지고 보면 ‘피해를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이 된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일이 끝난 시간은 밤 12시.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죠. 문제는 같이 야근을 한 부장님입니다. 막차는 지나간 것 같고 비는 내리고 해서 제가 승용차로 모셔다 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부장님과 제 집 방향이 정반대였지만 그 정도 호의는 베풀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장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심야버스나 택시타면 될 거라 하시면서 피곤한데 저더러 먼저 가라고 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저도 “그게 아니고요, 부장님께 긴히 드릴말씀이 있어서….(솔직히 드릴말씀 없었습니다 ^^)"

10분 동안 옥신각신 해도 결론이 나질 않았습니다. 신세 지는걸 워낙 싫어하는 부장님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날만은 꼭 모셔다 드리고 싶었죠. 결국, 부장님의 가방을 낚아채어 차에 싣고 나서야 부장님을 옆좌석에 태울 수 있었습니다. ‘강압적인 호의', 이 정도 생각하면 될까요?

차 얻어타고 가다가 큰 사고 났다...내가 베푼 호의가 상대방엔 부담

집으로 가는 동안 부장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굳이 제 차를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던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만에 하나 교통사고를 생각하신 겁니다. 부장님 친지 중에 호의에 못 이겨 남의 차를 얻어 탔다가 큰 사고를 당해 곤란에 처한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에이, 괜찮아요. 설마 그런 일 있겠어요?”라고 단순하게 응대했습니다. 그러나 부장님은 냉철하게 대답했습니다. 제 마음은 알지만 세상일은 절대 알 수 없는 것.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그것도 냉철하게 말이죠. 부장님 친지의 경우도 운전자는 잘 가고 있는데 뒤에서 받아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운전하면서 종종 사고가 날 뻔한 기억들. 조금만 늦었어도, 조금만 빨랐어도 분명 옆 차와 또는 앞차와 충돌했을 아찔한 경우가 있었죠.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지요.

특히 그 날은 비가 많이 오는 야간운전에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여서 여느 날보다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 컸던건 사실입니다. 부장님도 그 점을 깊게 생각하셨던 겁니다. 저는 혹시 너무 제 생각만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호의를 베푸는 것도 좋지만 상대방의 특수한 처지를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