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문화생활

당구 치는 엄마와 딸이 이상하다고요?

윤태 2009. 8. 25. 07:46

엄마와 딸이 한편, 아빠와 아들이 한편이 돼 가족끼리 당구를 즐기는 모습, 참 재밌지 않을까 싶네요.


최근 늘어 속속 늘어나고 있는 당구장, 예전보다는 쾌적해


요즘 들어 종종 당구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혹시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당구장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한때는 눈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로 당구장이 줄어든 적이 있었습니다. PC방, 골프연습장 등에 밀려서 말이죠.

사실 그동안 당구장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환풍도 잘 안되고 불량배들의 집합 장소나 도박 장소 등으로 인식이 됐었죠. 영화, 드라마 보면 꼭 당구장에서 주먹들이 칼에 대항해 당구 큐대를 휘두르며 싸우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여주곤 하죠. 만약 당구장을 아주 건전한 이미지로 설정하고 언론에서 자주 보여주면 당구에 대한 일반인들의 마인드가 바뀔 수도 있겠네요.

여하튼, 학교 졸업 후 당구장에 가본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최근 들어 가보니 예전과는 이미지가 사뭇 다르더군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고 과자, 삶은 계란 등이 간식으로 나오기도 하구요. 종종 고등학생들도 보였습니다.

다리 풀리고 눈 희미해질때까지 당구 치던 대학 시절

참으로 추억이 많이 서린 대학시절 당구장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15년 전 일이죠. 요금이 10분에 500원 정도 할 때였죠. 나중에는 워낙 난립하다보니 10분에 200원까지 요금이 하락해 당구장끼리 제살깎아먹기 경쟁도 했었죠.

대학시절 당구장에서 보낸 시간을 날짜로 계산하라고 하면, 아마....^^  당구비가 워낙 싸다보니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친적도 있었죠. 나중에는 다리 힘이 빠져 휘청거리고 당구공이 겹쳐 보이기도 했죠. 공이 제대로 맞을 리가 없었죠. 그때는 왜 그리 당구에 목숨을 걸고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 밥은 굶는 한이 있더라도 당구는 쳐야 했으며 돈이 한정돼 있을 땐 밥집 보다는 당구장을 먼저 찾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늘 붙어 다니던 친구 녀석이 있었죠, 자취 시절 네집, 내집 구분 안하고 터놓고 지내던 친구죠. 녀석과 거의 매일 당구를 즐기곤 했죠. 게임비는 지는 사람이 내는 것이구요. 그 친구가 지면 얼굴 표정이 몹시 어두워지곤 했습니다. 행동은 애써 괜찮은 척 하는데 눈빛과 표정으로 나타나는 패배에 대한 언짢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그 친구와는 당구를 치지 않으리라 마음도 먹어봤지만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 대학 시절 당구의 유혹이자 마약 같은 습관이었습니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구를 이기고 싶은 승부욕과 게임비를 물고 싶지 않아 반드시 승부해야한다는 불굴의(?)의지와 이겼을 때 완전히 변해버리는 절친한 친구의 언짢은 표정 사이에서 많이 갈등하고 고민하고 힘들었습니다. 친구와의 사이가 소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매번 일부러 져 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그런 재미없는 게임을 그 친구가 원하지도 않을테구요. 저보다는 한 수 위 실력을 가진 친구였으니까요.

나중에 이렇게 되더군요, 어떻게 됐냐구요?

제가 이기면 아무 말 없이 고개 숙이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구요. 제가 지면 오히려 신이 나서 녀석에게 뭐라고 신나게 떠들며 집에 가서 기타나 치자고...그러면 녀석 신나서 호응하고 그랬었거든요. 한마디로 이기는 날은 썰렁한 냉기류가 흐르고 지면 마음이 그렇게 편하고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공이 굴러가며 승패가 판가름 나는 순간(지는 순간)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녀석의 기분이 나쁘지 않아 기쁘다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상충된 마음이 제 가슴과 머릿속에서 자리 잡았습니다.

모처럼 대학시절의 추억을 꺼내드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네요 ^^

당구공이 굴러가는데는 공식과 길(route)이 있다지만 전혀 예기치 않은 변수도 많이 작용합니다. 물론 변수로 득점을 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미안함이나 예의의 마음을 표하는게 우리 당구계의 관행이죠. 하지만 그 변수조차도 실력의 한 부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 같은 편 되어 즐기는 가족 스포츠 되었으면....

숨을 죽이고 얼마나 세밀하고 정밀하게 힘의 강도와 공의 두께를 조절하고 큐를 날리느냐에 따라 짜릿한 득점 혹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득점을 못하게 되는 희비가 엇갈리는 당구. 빨간 공을 향한 흰공(노란공)의 예측 혹은 예측 불허의 길을 찾아 떠나는 과학적이면서도 비논리적인 게임???(당구의 특징과 매력을 생각하며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보려 하니 참 희한한 표현이 나오네요 ^^)

엄마와 딸이 같은 편이 되고 아빠와 아들이 같은 편이 돼 그 짜릿함의 승부를 겨뤄보는 건전한 스포츠로 탈바꿈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구가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닌 여성과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라....엄마들이 큐대 잡는 모습, 이상할 것 같습니까? ^^

우리 사회가 같이 만들어나가야 할 미래지향적인 모습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조만간 휴일에 아내에게 당구를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육아와 살림에 찌들어 늘 피곤함에 취해있는 아내에게 어떤 활력소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색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아서요. 육아와 살림이 삶의 전부인 양 떠안고 사는 아내에게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육아와 살림에 찌들어 사는 아내, 아내에게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무슨 변화가 필요한듯 합니다. 조만간 휴일에 당구를 가르쳐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