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이야기

막내 초등학교 졸업때까지만...하셨던 엄마

윤태 2010. 8. 8. 09:36


막내 초등 졸업때까지만 하시던 엄마가, 막내 군인 제대까지로...지금은 손자 장가갈때까지로 바뀌었습니다.


올해 고희(70세)가 되신 엄마. 완전 백발이시지만 염색을 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워낙 고생을 많이 하셔서 연세는 70이지만 실제 보이는 것은 85세 이상입니다. 시골 어른신들이야 다 그런 상황이죠.

아참, 지금도 그 고생은 ing 입니다. 논농사, 밭농사, 소농사 등 농사는 끝이 없으니까요. 아버지는 빨리 빨리 일안한다고 타박하시고 엄마는 농사 이제 징그럽다 하시며, 더 이상 가르칠 얘들도 없으니 남줘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은 10년전부터 하고 계십니다.

엄마가 국민학교 입학할 시기에 전쟁이 터지기도 했지만 여자가 공부해서 무엇하랴 라는 외할아버지의 마인드에 따라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가보시고 어깨너머로 글을 깨우치시기도 했지요. 그 시대 많은 어르신들이 이런 상황이었을 겁니다.

엄마는 워낙 몸이 약하고 편찮으신데가 많아 감기약 같은 가벼운 약을 드시거나 주사바늘 한번 꽂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모(큰어머니), 숙모 할 것없이 친인척들은 엄마가 오래 살지 못할거라고...그렇게 생각들, 짐작들 하셨고 엄마도 “막내 국민학교 졸업때까지는, ” 이렇게 작은 바람을 말씀하시다가는 “막내 고등학교 때까지는....” 점점 꿈이 더 커지시더니  급기야 “막내 군인가는 거나 봤으면....” 하고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셨습니다. 그런데 막내 제대한지가 벌써 10년 정도 지났습니다. ㅋㅋㅋ

요즘은 6살 된 손자 “장가 갈 때 까지 살 수 있으려나?” 하십니다.  빨라도 앞으로 20년 은 사셔야하는데 말이죠. 워낙 이곳저곳 편찮은데가 많으셔서 삶의 질도 상당히 떨어졌지만 그래도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시는데 문제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쭈글쭈글 엄마와 최첨단 IT와의 만남이 안타까운 이유

하루하루 고된 농촌의 삶을 저녁 일일연속극으로 버티고 계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루도 어김없이 보고 계시니까요. 바로 그 재미니까요. 이번 휴가때 가족들이 둘러모여 밖에서 식사를 하는데 엄마께서 막내더러 휴대폰 TV를 켜달라 하시더니 DMB를 통해 일일연속극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쭈글쭈글한 엄마의 얼굴과 최첨단 IT와의 만남이 제가 보기에도 좀 매치가 안 되는 상황이었고 엄마도 이런 생활이 익숙칠 않았는지 멋쩍은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엄마가 살고 계시는 세상은 이렇게 좋은 세상입니다. 1년, 2년 지나면 더 좋은 세상, 편리한 세상이 오겠지요.

반면 엄마를 기다리는 세상을 생각해보면 안타깝고 안쓰럽습니다.

이런 세상을 오래전부터 누리시던가 아니면 앞으로 몇십년 후에 이런 세상이 오던가 했었더라면....차라리 이렇게 마음이 뭉클하진 않았을텐데 말이죠...

 

좋은 세상을 만나는게 부모님께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