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이야기

비 와서 선선해 좋은데 시골에서는 울상

윤태 2010. 8. 25. 15:25

해마다 겪는 이 일, 이 쓰러진 벼 일으켜 세우려면 시골 어르신들 허리 끊어집니다.



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국지성 폭우로 말이죠. 바람도 거세게 몰아칠때도 있구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빛이 완연하겠지요? 단풍도 곱게 들테구요. 물론 낮동안엔 좀 더울테지만요.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논의 벼가 다 엎쳤고 그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식사도 못하고 상심이 크다고 하십니다. 추석도 머지 않았는데 막 영글어가는 벼가 엎어지다니..

“아버지 식사도 못하신다면서요. 벼 엎쳐서 어쩐대요. 그거 다 언제 일으켜 세운대요?”
“야, 그거 너희들 6남매(사위, 며느리)다 와서 보름동안 일해도 다 못 세우겠더라.”
“그러게요, 어쩐대요?” “그렇다고 그냥 놔 둘 수도 없고.”
“야, 속상해서 논에 가기도 싫다. 그런데 어쩌냐, 마음을 비워야지. 휴~.”

저는 알고 있습니다. 유독 우리 논의 벼만 왜 그렇게 엎어졌는지. 모두 아버지의 부지런함 때문이라는 걸 말이죠. 3월 모내기하기 전 너무나 많은 두엄을 내셨고, 남들보다 더 많이 비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벼가 다른 논의 벼보다 낟알이 굵고, 무겁기 때문에 약한 비, 바람에도 쉽게 쓰러졌다는 것을 말이지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늘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한 정성을 쏟는 일이 결국 농사를 망칠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아시면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말이지요. 단지 큰 태풍이 비켜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아버지, 부디 내년부터는 너무 많은 거름, 비료 주지 마세요. 수확량이 좀 줄어들더라도 꼭 그렇게 하십시오. 더 이상 가르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식구들 ‘양식’만 하면 되잖아요. 더군다나 내년이면 75세 되시고 지금도 밤이면 삭신이 쑤신다고 늘 말씀하시잖아요.

죄송합니다 아버지. 해마다 두엄, 모내기, 농약, 추수 등 일손이 한참 달릴 때 도시에 산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 삼아, 주말에 차 많이 막힌다는 핑계로 자주 내려가지 못한 점 말이지요. ‘꼬부랑 할머니’가 다 되신 어머니께서 무더운 여름날 농약 줄을 붙잡고 아버지와 실랑이를 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요 며칠 내린 비를 보고 나서야 간절한 아버지 생각에 몇 줄 올립니다. 이번에 내린 비로 엎어진 벼에 싹이 트겠죠? 그렇게 되면 벼의 상품 가치는 최악이 되는 것이고요. 한 알 한 알 싹이 나올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알의 망가진 곡식이 이토록 아버지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네요.

추수가 끝난 늦가을.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그 너른 빈 논을 빠짐없이 돌아다니시며 한 톨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볏 이삭을 주우실 것입니다. 곡식을 향한 아버지, 어머니 마음이 이러할진대 엎어진 논에서 싹을 틔우는 벼를 바라보시는 마음은 어떠하실는지요.

아버지, 내년에는 부디 거름, 비료 너무 많이 주시지 마세요.


벼가 쓰러지면 빨리 일으키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일손도 부족한 농촌, 쌀값도 안나가는데 해마다 한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