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실동화

[사실동화] 12. 할머니, 붕어잡아 왔는데...

윤태 2007. 8. 25. 09:10

12. 할머니, 붕어잡아 왔는데...


건강하던 민식이 할머니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다. 얼굴이 누렇게 변하는 황달병에 걸린 것이다. 할머니는 얼굴뿐만 아니라 어느덧 눈동자까지 노랗게 되었다.


민식이 아버지는 물론 형 민철과 동생 민호도 할머니 때문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할머니께서 끔찍이도 손자들을 귀여워하셨기에 손자들은 할머니가 잘못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때 옆집에 살고 계신 나이 많이 드신 할머니께서 묘한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옆집 할머니께서 민간요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일종의 미신이었다.


“붕어하고 눈 마주치고 있으면 황달병이 붕어한테 옮아가.”

“할머니, 그게 정말이예요?”


민철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집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순간 민철이의 눈이 빛났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민철이에게 있어 옆집 할머니의 황달병 민간치료법은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민식아, 얼른 그물 챙겨. 민호는 외양간 가서 물 양동이 가져오고.” 

“알았어 형.”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민식과 민호는 붕어를 잡아오면 할머니의 황달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아프기 전 벙실벙실 웃으며 손자들을 다독거렸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3형제는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3형제는 칼바람을 맞으며 냇가로 향했다. 상짓말 냇가 물은 군데군데 얼어 있었다. 먼저 큰형인 민철이가 양말을 벗고 냇가에 발을 담갔다. 곧이어 동생 민식이도 형의 뒤를 따랐다.


“아야, 차가워. 형, 발 너무 시려워.”

“조금만 참아. 큰놈으로 대여섯 마리만 잡자. 민호 너는 물에 들어오지 마. 냇가 둑 따라서 형들 쫓아와. 양동이 물에 떨어뜨리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 형.”


그러나 기대한 것과는 달리 물고기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넓은 냇가의 붕어들은 3형제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매번 빈 그물만 들어 올렸다. 첨벙첨벙 물이 옷에 튈 때마다 추위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형. 어떡하지?”

“...”


민식이의 물음에 민철이도 대답을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막내 민호는 벌써 지쳤는지 양동이를 힘없이 땅에 끌고 다녔다. 물고기 한 마리 담지 못한 양동이였다.


한 시간을 그렇게 헤매고 다녔을까. 민철이는 단 한 마리라도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집에서 붕어를 무척이나 기다리고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바로 그 순간 3형제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아시스 모양의 물웅덩이에 뼘치보다 더 큰 붕어 수십 마리가 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냇가 폭이 넓다보니 위에서 떠내려 온 모래와 흙이 쌓여 냇가 한가운데 물웅덩이를 만든 것이었다. 삼형제는 붕어를 양동이에 주워 담았다. 그물질 한번으로 한꺼번에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형, 이 정도면 할머니 병 나을 수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얼른 가자.”


삼형제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길을 재촉했다. 2월의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희망의 불로 타오르는 형제들의 뜨거운 가슴을 식힐 수는 없었다. 집에 다다랐을 즘 동생 민식이 갑자기 휘청거렸다.


“아야.”


순간 민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검정 고무신 한쪽은 뒤에 떨어져 있었다.


“민식아, 왜 그래? 어디 다쳤니?”

“아냐 형, 돌부리에 걸렸어. 얼른 가자. 할머니 많이 기다리시겠다.”

“그래, 정말 괜찮지?”


민식이는 절뚝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한 형제들은 서둘러 놋대야를 방안으로 들고 와 붕어들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누워 계신 골방으로 가져갔다.


“할머니, 할머니, 여기좀 봐. 붕어 잡아왔어. 얼른 일어나 봐.”


막내 민호가 야단법석을 떨었다.


“날씨 추운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할머니는 놋대야의 붕어들을 보시며 손자들의 기특한 행동에 감탄했다. 손자들은 또한 기뻐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이어 할머니와 붕어들과의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생사를 건 눈싸움이었다. 이제 황달병이 붕어에게로 옮아가는 일만 남았다.


민철이가 골방에서 나오자 민식이가 발에 빨간 약을 바르면서 붕대를 감고 있었다.


“너 어떻게 된 거니? 돌에 걸렸다며?”

“응, 별거 아냐. 아까는 아픈 줄도 몰랐어.”


민식이는 돌부리에 걸린 게 아니라 사실 유리조각에 찔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빨리 붕어를 할머니께 갖다 드려야한다는 생각에 다쳤다는 사실을 감춘 것이었다. 형한테는 그냥 돌부리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식이는 할머니의 병이 낫기만 한다면 자신의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어른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할머니의 황달병은 나아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결국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했다. 민철이와 동생들은 할머니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손자들이 학교에 간 사이 병원에 입원하신 것이었다.


입원한 지 닷새 만에 이장님 댁 전화로 연락이 왔다. 할머니께서 먼 길을 떠난 것이었다.  이튿날 손자들은 누런 삼베에 싸인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헤어질 때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한 할머니였는데 이런 모습으로 오시다니. 3형제는 할머니의 영정앞에서 울고 또 울었다.


할머니의 장례가 끝나자 식구들은 할머니가 쓰던 물건들을 태우기 위해 골방의 장롱을 열었다. 까만 비닐봉지에서 말랑말랑한 연양갱과 카스텔라 빵이 나왔다. 두 달 전 민철이가 할머니께 사다 드린 것인데 시간이 꽤 지난 탓에 곰팡이도 군데군데 슬어 있었다. 이가 없어 말랑말랑한 것으로 사다드렸는데 아껴 뒀다가 손자들 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손자들은 목이 메었다. 금방이라도 할머니가 골방 한구석에서 일어나 손자들을 부를 것만 같았다.


“형 붕어 생각하면 너무 속상해. 효험이 없었던 것 같아.”

“아냐, 우리가 붕어 잡아왔을 때 할머니 표정 봤니?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표정이셨어.”

“그래서?”

“붕어 때문에 기뻐하셨던 할머니의 표정, 그게 바로 효험이었던 거야. 내 기억 속엔 할머니의 그 행복한 모습만 보여.”

“형.”


민철과 민식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