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실동화

[사실동화] 14. 돌아온 누런둥이

윤태 2007. 8. 25. 15:52

14. 돌아온 누런둥이


1년 전, 토종 진돗개 종류인 누런둥이는 시골 영미 할머니네 집에서 무녀리(맨 먼저 태어나 몸집이 유난히 작고 허약함)로 태어났다. 어미는 누런둥이를 비롯해 4마리의 새끼를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할머니는 새끼들에게 어미 젖 대신 유통기한이 지난 분유를 먹였다. 그러나 누런둥이는 몸집이 작은 무녀리라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에 사는 영미가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 누런둥이를 서울로 데려오게 되었다.


“아이고 녀석, 누릇누릇한 게 정말 귀엽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누런둥이야. 알았지?”


태어나자마자 불가피하게 어미에게 버림받은 누런둥이는 상냥한 영미의 말에 안심을 하는 듯 보였다. 서울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꾸며 누런둥이도, 영미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상경한 누런둥이는 아파트에서 어려움 없이 지냈다. 유통기한이 지난 분유 따위를 먹을 필요도 없었다. 기름진 음식에, 또 영미가 워낙 잘 돌봐주는 탓에 누런둥이의 몸은 튼튼해졌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누런둥이의 몸이 그렇게까지 불어날 줄 영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3개월 만에 누런둥이는 너무 많이 커버렸다. 그러자 식구들이 누런둥이를 꺼리기 시작했다. 안아주기는커녕 누런둥이가 다가서려고 하면 밀쳐내기 일쑤였다.


“누런둥아, 어떡하니? 너 이제 어디로 가니? 흑흑.”

“...”


영미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누런둥이는 가련하게 내려다보는 영미를 향해 낑낑거리기만 했다.  영미도 누런둥이를 어딘가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누런둥이가 아파트에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영미는 누런둥이를 신정동 회사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출입문 왼쪽에 묶어 두었다.


“누런둥아,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 여기는 넓어서 네가 사는데 아무 문제없을 거야.”


영미는 누런둥이를 내려놓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누런둥이는 또다시 버려진다는 사실을 눈치 챘는지 한동안 물끄러미 영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누런둥이는 이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누런둥이 눈에 비친 건물 옥상은 굉장히 넓었지만 아파트에서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줄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런둥이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영미님, 저 뛰어다니고 싶어요.”


낑낑거리는 누런둥이를 향해 영미는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런둥아,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돼. 사람들이 널 무서워한단 말야‘”


누런둥이의 옥상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건물 옥상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만든 식당이 하나 있었다. 가방을 봉제하는 이 회사는 회사 근처에 마땅히 식사할 데가 없어 옥상에 직원 식당을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누런둥이는 굶지 않고 옥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누런둥이에 대한 영미의 관심은 점차 식어갔다. 처음에 귀여운 모습을 보고 데려왔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영미의 직장 동료인 은실이가 누런둥이의 밥을 끼니때마다 챙겨주었다.


“아이고 가엾은 누런둥이.”


은실이는 누런둥이를 감싸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누런둥이는 은실이를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은실이도 언젠가는 영미처럼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누런둥이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은실은 진심으로 누런둥이를 대했다. 추운 날엔 엄마 몰래 내복을 꺼내와 누런둥이에게 입혀주기까지 했다. 소매를 조금 자르고 머리 들어가는 구멍을 넓혀 누런둥이의 몸에 맞게 옷을 만들었다. 은실이는 옷이 벗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옷핀을 끼우는 등 세심한 것까지 잊지 않았다.


이러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누런둥이의 옥상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이 회사 남자 직원들이 누런둥이를 이유 없이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괴롭혔지만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남자 직원들은 발길질을 하거나 막대기를 이용해 누런둥이를 때렸다. 또 어떨 때는 누런둥이를 골대처럼 생각하고 축구공을 날리기도 했다. 이럴수록 누런둥이는 그 사람들을 향해 더욱 더 큰소리로 짖어댔다.


“멍멍멍! 멍멍 멍 멍 멍.”

“이놈의 개가 미쳤나?”

“멍멍멍! 으르렁 멍!”


누런둥이는 으르렁대며 남자 직원들을 경계했다.


“야, 저거 짖는 것 좀봐. 너 한번 맞아 볼래?”

“깨갱 깨갱”

“한번만 더 대들면 그땐 정말 각오해.”


가방 끈으로 사용하는 인조가죽에 매질을 당한 누런둥이는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1미터도 안 되는 줄에 매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한탄을 하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누런둥이와 남자 직원들 간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직원들만 보면 누런둥이는 으르렁댔고, 그럴수록 직원들은 더 심하게 괴롭혔다. 게다가 더욱더 커 가는 몸집과 무섭게 생긴 얼굴이 사람들로 하여금 누런둥이를 피하게 만들었다. 외모 때문에 이유 없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샀던 것이다.


그러나 은실이 만큼은 누런둥이를 아껴주었다. 집에 있는 애완견 강돌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런둥이의 성격은 사나워져 갔지만 유독 은실이 한테 만큼은 꼬리를 흔들며 착하게 굴었다.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커져가는 만큼 은실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은실이는 누런둥이를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옥상에 두었다가는 누런둥이가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은실이는 그동안 누런둥이와 정이 많이 들었던 터였다.


그러나 은실네 집에 와서도 누런둥이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강돌이와 자주 싸웠고 그때마다 덩치 큰 누런둥이만 혼나기 일쑤였다. 은실이는 누런둥이의 아픔을 알고 있었지만 은실이 아버지는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강돌이만 귀여워했다. 오늘 아침에도 둘이 싸우다가 은실 아버지한테 누런둥이만 혼났고 이 때문에 또다시 강돌이와 다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다. 밥 줄 때만 제외하고는 누런둥이와 강돌이는 사이좋게 지냈다. 누런둥이를 바라보는 은실이 아버지의 마음도 많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은실이 엄마가 누런둥이를 싫어했다. 앞마당에 묶어 놓은 누런둥이 때문에 털이 날려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은실이 아버지와 엄마는 누런둥이 문제로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결론은 은실이 몰래 누런둥이를 팔기로 했다. 대신, 은실이한테는 누런둥이의 목사리에 풀려 도망갔다거나 누가 훔쳐간 것처럼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다음날 저녁 퇴근해 들어온 은실은 깜짝 놀랐다. 꼬리를 흔들며 벙실벙실 웃고 있어야 할 누런둥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빠, 아빠, 누런둥이 어딨어요?”


은실이는 숨이 넘어가는 듯한 급한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다.


“나도 들어와보니까 누런둥이 목사리가 풀어져있고, 없어졌더구나. 도망간 건지 누가 끌고 갔는지... 나 원 참. 세상에 별일이...”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며 혀를 찼다. 옆에 있던 엄마도 한마디 거들었다.


“여보, 아침에 나갈 때 대문을 제대로 안 닫고 나간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골목인데 설마 누가 끌고 갔으려구요?”


은실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작정 누런둥이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대문이 열리는 바람에 누런둥이는 넓은 세상을 향해 잠시 바람 쐬러 간 것이고 곧 돌아올 것이라고 은실이는 믿었다. 불길한 생각은 아예 하기도 싫었다.


그날 밤 늦게 누런둥이는 정말 돌아왔다. 한 밤중 대문을 닥닥 긁는 소리에 깬 식구들은 누런둥이의 모습에 놀랐다. 머리와 입은 피투성이에다 다리도 여기저기 찢긴 모습으로 누런둥이는 절뚝거리며 은실네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개를 가두는 철망의 벌어진 틈 사이를 머리로 벌리고 입으로 물어뜯고, 다리가 걸려 찢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탈출했던 것이었다.


누런둥이를 부둥켜안고 우는 은실이를 보면서 은실이 부모님은 후회했다.


“은실아, 누런둥이가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 잘 보살피자꾸나.” 


부모님은 그제야 비로소 누런둥이를 가족으로 받아들기로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