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실동화

[사실동화] 7. 차마 마지막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윤태 2007. 8. 24. 01:44

7. 차마 마지막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경민이는 3년 전 아내와 결혼하면서 금연을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담배를 다시 피우면 이혼도 감수하겠다며 각서까지 썼다. 그러나 금연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경민은 낮에 회사에서 담배를 태우고 양치질은 물론 껌을 몇 개씩 씹고 퇴근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털어내려해도 찌든 담배냄새는 조금씩 풍겨왔다.


“당신, 담배냄새 나는데. 어디, 왼손좀 내밀어봐.”


아내가 경민이의 왼손을 잡아당기며 냄새를 맡으려하자 얼른 손을 빼며


“무슨 소리야? 내가 각서까지 썼는데 무슨 담배를 피웠다고 그래?”

“들어오자마자 담배냄새가 나는데 이건 뭐야? 내 코는 못 속여.”

“아, 그...그거 사무실에서 정과장님하고 같이 있다보니까... 과장님이 하루에 두 갑씩 피우잖아. 나한테도 냄새가 배었어.”

“정말이야? 그런데 냄새가 너무 강한데, 이리 와서 입 한번 벌려봐.”

“나 참, 왜 그래? 안 피웠다니까. 얼른 밥이나 줘. 배고프단 말야.”


경민이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다시 한번 양치질을 했다. 저녁밥 달라고 해놓고는 양치질을 해버린 것이다. 경민이는 놀란 가슴을 쓸어안고 큰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경민이가 금연했다는 것을 아내에게 떳떳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이러한 행동은 아내의 의심을 더 키울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 당신 퇴근해서 들어오면 왜 뽀뽀도 안 해줘? 뭐 찔리는 거 있남?”

“허허, 무슨 소리? 이리 와.”


퇴근해 들어온 어느 날 경민이는 아내에게 다가가 번개같이 볼에 뽀뽀를 하고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뽀뽀할 때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재빠른 남편의 행동에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심증은 분명한데 물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꼬리가 밟히고 말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담배 생각이 간절했던 경민이는 차에 신문을 두고 왔다며 가지러 간다고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다. 설마 옷까지 챙겨 입고 4층에서 저 아래 골목에 세워 둔 차 있는 곳까지 쫓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 슬금 나온 남편은 차 앞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들고는 트렁크 문을 열어 무엇인가를 꺼낸 후 주위를 살피더니 집 반대 쪽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골목에 쪼그려 앉아 서둘러 급하게 담배를 빨아대는 장면을 아내는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는 질겅질겅 껌을 씹고 그것도 미덥지 않았는지 주머니에서 귤을 꺼내 까먹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이었다.


“아니, 저 사람이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 귤까지 챙겨왔네.”


그 날 저녁 아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넘어갔다. 무슨 이유였을까.


다음날도 남편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차에 서류를 놓고 왔다며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물론 경민은 일부러 서류봉투를 차에 두고 왔다.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가로막았다.


“여보, 잠깐, 내가 갔다 올게, 어차피 슈퍼에서 양파도 사야하거든. 오늘 고기 재놔야 내일 먹지.”

“아....아냐, 내가 갔다 올게. 양파 얼마짜리 사면 돼?”

“아냐, 내가 갔다 올게. 저번처럼 깨지고 썩은 양파 사 오려고? 내가 직접 골라야지.”

“아니, 그래도 내가...”


순식간에 차 열쇠를 낚아챈 아내는 벌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만약 트렁크를 열기라도 하면 모든 게 끝장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경민이는 아내가 설마 트렁크까지 열어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단지 경민이의 간절한 바람 일뿐이었다.


10분 후 아내는 양파 한 자루와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경민이의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서류봉투를 건네주며 말을 건넸다.


“자, 여기 있어.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차에 놓고 오는 게 그리도 많아?”

“응, 요즘 들어 부쩍 깜빡깜빡하네.... 헤헤”


경민이는 놀란 가슴을 다시 한번 쓸어내리며 앞으로는 좀더 조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자동차 트렁크보다 더 안전한 곳이 담배를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다음 날 출근한 경민이는 트렁크에서 담뱃갑을 찾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후미진 구석에 있어야 할 담배와 라이터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오렌지색 포장지에 싸인 선물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한 일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두려움에 가득 찬 경민이는 조심스럽게 선물을 풀었다.


“자기야, 담배 끊기가 그렇게 힘들면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지. 거짓말하고 숨어서 피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 담배 피우고 싶은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왜 금연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알잖아? 오늘 일찍 들어와. 자기 좋아하는 우렁 된장 해놓을게. 사랑해 자기야.”


이렇게 씌어진 아내의 메모가 먼저 나왔다. 그리고 상자를 여는 순간 담배 한 개비와 50원짜리 성냥갑이 들어 있었다. 성냥갑 속에는 역시 1개의 성냥개비만 들어있었다. 경민이는 이 담배 한 개비를 끝으로 금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간절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지난 봄 여의도 윤중로 벚꽃 길에서 아내와 손잡고 찍은 사진이 하트모양의 작은 유리액자 속에 담겨져 있었다. 액자 위쪽에는 하얀 색 수정 펜으로 쓴 ‘금연’ 글자가 아주 자그맣게 보였다.


경민이는 마지막 담배에 차마 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대신 담배를 두 동강 냈다. 어젯밤 차 트렁크를 열며 이 선물을 넣는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