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야기

아들 이름이 왜 '어진'인가 했더니...

윤태 2009. 8. 6. 14:02


"내게도 돈 낼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제가 지난 2002년 초 결혼과 함께 이곳 성남에 자리를 잡게 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93년대학때 친하게 지낸 같은 학과 형이 성남에 살았기 때문이죠. 그 형이 군에 가 있는 동안 그리고 제가 군에 있는 동안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죠.

자신보다는 늘 남을 챙기고 배려해 주었죠. 철저하게 퍼주기만 했던 형이죠. 밥을 먹거나 당구를 쳐서 지거나 이기거나 결과에 상관없이 늘 형이 돈을 내곤 했죠. 어느날은 너무 미안해서 내가 먼저 돈을 내려고하니 형이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벌컥 화를 내기에 그 후로는 감히 어떤 경우에도 돈을 꺼낼수가 없었습니다. 두 살 많은 형이죠.

그런데 사람 사는게 다 그렇데요. 같은 성남에 살면서 그동안 몇 번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사는게 팍팍하니 가족끼리 모여 어디 어디 놀러도 못갔네요. 각자 생활에 충실했던 것이죠.

그러다가 3년전 연락이 끊겼습니다. 도무지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지인들 다 수소문해도 소용없었죠. 혹시 블로그 글 보고 연락올까 생각도 했지만.... 길에서 우연히 한번쯤은 마주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살고 있었는데 엊그제 연락이 왔습니다.

일 끝나기가 무섭게 늦은밤 만났습니다. 많이 야위었더군요. 그동안 아이도 하나 더 태어나서 모두 세 명이 되었더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여곡절도 있었고 고생도 많이 했으며 연락할 상황이 안돼 모두 연락 끊고 지내다가 어느정도 심신에 안정이 돼 연락을 하게 됐다고...우연히 제 전화번호를 찾았다고 하더군요.

늦은 시간 형과 밥을 먹었습니다. 형이 밥값을 내고 나오면서 수박을 사주겠다고 하더군요. 뭐든지 퍼줘야하는 성격, 그대로였습니다. 대뜸 큰 수박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1만 3천원!!

허걱, 굳이 수박 사줄테면 저기 7, 8천원짜리 있는데 저걸로 사달라고 해도 어디 들을 사람입니까? 수박 사줄 돈은 있다면서 대학대부터 늘 그랬듯이 지갑도 없이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천원짜리 꾸역꾸역 꺼내 수박 값을 지불하면서, 복숭아, 사과, 체리 이런 것들 아기 갖다 주라며 또 사준다고 하기에 “집에 다 있다”는 말로 일축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긴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형입니다 ^^

아래 글은 전에 쓴 사실 동화 글인데요. 이 형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글입니다. 형 이름과 아들 이름은 실명입니다. '성민'은 바로 저입니다 ^^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이 많고 욕심이 지나쳐 입에 담을수 조차 없는 반인륜 범죄까지 심심찮게 들려오는 지금 상황에서 아래 일화는 우리들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듯 합니다.


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가며 살아가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전에 써 놓은 일화-


차비까지 털어 타인 도와주는 그...


현균이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친절을 베풀었다. 천성이 착한 탓이었다. 독서실에서 새우잠 자면서 생활하고 새벽에는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에 다니는 현균은 착하기도 했지만 한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현균은 심지어 차비까지 털어 친구들을 돕고 대신 걸어서 독서실에 들어갈 때도 많았다. 이런 현균이를 반 친구들을 물론 후배들까지 졸졸 따르며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친한 사람은 현균보다 두 살 어린 성민이었다. 

“현균형, 어제 또 걸어갔지?”

“아니, 뛰어갔다. 왜?”

“뭐, 뛰어가?”

“그래 뛰어가니까 운동되고 좋더라.”

현균이는 한바탕 웃어버렸다. 참으로 못 말리는 사람이었다. 

그 날도 현균이와 성민은 점심을 먹기 위해 교내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성민이가  밥값을 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성민이가 식권을 사려고 돈을 내미는 순간 어김없이 현균이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야, 됐다. 집어넣어.”

“형, 제발 나한테도 기회를 줘.” 

“기회는 무슨 기회? 꽝, 다음 기회를...”

현균은 농담까지 해가며 성민이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성민이는 이에 지지 않고 식대 판매 창구 앞으로 돈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성민이의 손을 툭 치며 현균이가 핀잔을 주었다.

“야, 성민아. 너 부모님 시골서 어렵게 농사일 하셔서 학비 보내주시는데 아껴야지.”

“아이 참, 형네 집은 넉넉한가?”

“야 임마, 나는 장학금 받잖아. 얼른 집어넣어.”

옥신각신 다투는 중에도 성민이가 계속 돈을 내려고 하자 현균이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김성민, 너 이 형한테 한번 혼나볼래?”

현균이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성민은 도리가 없었다. 성민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현균이가 사주는 밥을 그저 맛있게 먹는 것뿐이었다. 무조건 퍼주기만 하는 현균이를 생각하면 어떤 때는 화가 치밀었다. 성민이는 현균이가 세상을 좀 영악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큰 기대였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일 후 성민이는 현균이를 자신의 자취집으로 데려갔다. 독서실에서 새우잠 자는 현균이가 보기 안쓰러웠던 것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현균이를 따듯한 방에서 마음 편하게 재우고 싶었던 것이다.

“형, 오늘은 내가 예술 라면을 끓여주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그래. 기대하마.”

버스에서 내리며 성민이가 말을 걸었다. 자취집 앞 골목에 다다르자 성민은 슈퍼마켓을 향해 뛰었다. 이번에도 또 현균이가 라면을 살 것 같아 선수를 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순간 뒤에서 현균이가 성민이를 불러 세웠다.

“야, 성민아, 어디 가냐? 라면 사러 가냐?”

“아냐, 형.”

성민은 대충 얼버무리며 슈퍼를 향해 계속 뛰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균이가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성민아, 라면 여기 있다.”

무슨 말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고 나서 성민이는 할말을 잃었다. 현균이가 가방 속에서 빨간 라면을 꺼내 흔들어 보이며 웃고 있었다.

“아이고, 형, 라면은 또 언제 산거야?”

“하하하. 내가 또 이겼지? 성민아 너는 계란이나 한 개 사라.”

사실 현균이는 아까 학교 매점에서 라면을 미리 사뒀다. 화장실 간다고 했을 때 좀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라면을 샀던 것이다. 이런 현균이의 배려에 성민이는 두 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은 흘러가고 어느 덧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현균이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형, 아들 낳았다며? 그래 이름은 뭐야?”

“응, 어진이다. 유어진. 이름은 내가 지었다. 하하하.”

현균이의 무조건적인 배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아들 “어진이”도 아빠처럼 무엇인가를 베풀며 “어질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성민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역시, 현균형이야.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