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야기

아들 일기장 찢고나서 얻은게 있습니다

윤태 2011. 9. 24. 12:24

 

5살, 99센티의 작은 키로 두발 자전거에서 홀로서기 만든건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뭐든지 일찍 시작하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40대 중반의 가장이 자전거를 타본 경험이 없고 탈 줄도 몰라 5살짜리 늦둥이 외동딸이 아빠 자전거 뒤에 태워달라고 졸라도 그 작은 소망을 들어주는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동차 운전도 할 줄 몰라 세상에서 대중교통이 제일 편하다고 하던 그. 주차문제며 기름 값이며 그 유지비 신경 쓸 것 없이 가장 편한 건 대중교통이라고 말이죠. 승용차를 운전하는 즐거움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로써는 당연히 대중교통이 편리할 수 밖에요.

그 어떤 것이던지 경험이 중요하고 누구보다 더 먼저 경험하고 오랜 기간을 거쳐 숙련하게 되면 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40대 가장의 교훈을 뼈저리게 느껴서 저는 생후 48개월에 몸무게 16kg, 키 99센티, 당시 5살이던 첫째아이 새롬이에게 3~4일 동안 총 연습시간 서너 시간 만에 보조바퀴를 걷어내고 두발자전거 홀로서기에 성공했습니다.

처음부터 보조바퀴 같은 건 있지도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제 사촌이 한참 타던 자전거를 자동차 지붕위에 실어 성남에 가져와 배운 것이니까요. 7살인 지금은 성인 자전거 안장과 핸들을 내리고는 마치 사이클 선수라도 된 양 누비고 다니는 걸 보면서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 집 아이들이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직접 체험하던 책을 보던 티이브이나 인터넷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하는 등 직간접 경험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오디션프로그램, 뉴스 등등 보여주고 설명하고, 물어보면 대답해주고 뭐든지 경험하게끔 해줍니다. 그 무엇이든지 많이 보고 듣고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게 하는 것이죠.

한글 깨우쳤으니 일기 쓰기로 글솜씨 키워보자!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돼야 머릿속에 잘 정리해두면 아이가 개인적으로 추억과 감동과 어떤 특정한 정서를 간직할 수 있고 학습적으로는 일기 등 글쓰기 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토론논술을 지도하는 저로써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고 있고 우리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꾸준히 노력해 글 쓰는데는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수업을 하다보면 학부모님들이 늘 묻고 합니다. 베이스 7살부터 6학년 고학년까지 아이들이 글쓰기를 싫어하고 어려워하고 솜씨도 없어 고민인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달리 코치해 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초등 저학년 같은 경우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일기 등을 쓸 때 아이와 즐겁게 이야기 나누면서 쓸 내용을 충분히 머릿속에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글쓰기를 해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꾸준히 쓰는 수밖에 없다고요. 자꾸 자꾸 쓰다보면 내용도 풍성해지고 쓰는 기법도 세련되며 맛깔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말이죠.

이런 까닭에 저는 큰아들 새롬이가 6살 되던 여름 때부터 그림일기가 아닌 글로만 된 일기쓰기를 하도록 했습니다. 일기에 쓸 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특히 주말만 되면 이곳저곳 일부러 찾아다니며 경험을 하도록 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해 폭넓게 경험하지 못하면 집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풀 한포기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를 심어주고 설명해주면서 감성이 풍부해지도록 교육 방침을 실천해 왔습니다. 잘 기억해 뒀다가 일기 쓰는데 참조하라고 하면서요. 

사실 6살짜리가 뭐 매일 매일 특별한 일이 있겠으며 그것들을 다 기억해내 일기에 적을 수 있을까요? 사실은 무리라고 할 수 있지만 최소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는 짧던 길던 일기를 쓰도록 의무화 하다 시피 했습니다.

6살때는 제법 잘 썼습니다. 그러나..



6살 아이에게 많은 부담이 됐을겁니다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집중이 안 되니 쓰는데 시간은 걸리죠. 사실 6살 아이가 저녁에 일기를 쓰고 싶겠습니까? 세 살난 제 동생과 뛰어놀고 싶고 장난치며 놀고 싶을 뿐이죠. 그래도 저는 강행했습니다. 책 많이 읽고 많은 경험하고 글(일기)도 잘 써야 앞으로 세상을 사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귀에 딱지가 앉게 설명을 했습니다.

일기쓰기를 두고 밀고 당기는 중에 쓰기 실력도 꽤 늘었습니다. 또래 같으면 한글을 갓 떼거나 혹은 배우기 시작할 무렵 새롬이는 적잖은 분량을 써 내려갔기 때문이죠. 지난해 연평도 포격사건을 TV 뉴스에서 보고 어린이집 선생님께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그것을 주제로 일기를 쓰되 느낀 점까지 제법 적어 내려갔습니다.

가끔은 아이의 일기를 복사해 가 저학년 회원들 어머님께 교육 상담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경험’을 역시 강조하면서 말이지요. 6살짜리가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 일기를 쓰는 모습을 보고 어머님들은 놀라워했습니다. 다만 우리집 아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몇몇 분들은 눈치를 채고 계셨지만요.

기분 좋게 스스로 잘 쓰는 날과 억지로 써서 실망스러운 내용의 일기 쓰기가 반복되는 가운데 일기장은 너덜너덜해졌고 새롬이는 그것을 보물인양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일기장에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다고 해야할까요?

일기 쓴 내용을 칭찬 해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제 스스로 기고만장해서 우쭐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쓰기 싫을 땐 일기장이 사약과도 같은 끔찍한 존재가 될 수 밖에요. 일기장 한권을 다 채우면 무선자동차를 사주기로 약속하고 그 목표 달성이 얼마 남지 않았던 그해 겨울.

일기장 '난도질 사건'사건을 통해 깨달은게 있었습니다.


산산조각 난 큰아이의 일기...애증이 담긴 일기가...

2011년 2월 9일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일기를 쓰다가 짜증을 부리고 울다가 소리 지르고, 엄마는 “오늘은 그만 써라”, 새롬이는 “아니다. 쓰겠다,” 울고 불고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실랑이가 한참이던 때 제가 몹시 화가 나 녀석의 일기 한권을 몇 조각으로 찢어버렸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화나 났던 적도 없었을 겁니다.

지난 7개월 동안 새롬이가 간직해 온 추억, 기쁨, 행복, 슬픔, 아픔, 고통, 칭찬...세월도 기억도 아끼던 보물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새롬이는 많이 울었습니다.

저는 후회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저는 새롬이에게 일기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새롬이는 그 지긋한 일기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어린이집에서 받아오는 그림/글씨 일기만 해가면 되었습니다. 저도 아내도 아이도 기존의 일기 쓰기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종종 제가 찢은 일기를 붙여놓으라고 했고 저는 너무 발기발기 찢어 불가라고 했습니다. 새롬이는 옆에서 ‘엎질러진 물’ 이라며 시시덕거리곤 했습니다. 새롬이의 추억을 다시 조각조각 맞춰 볼까 생각도 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새롬이의 추억을 다시 살릴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다시 복원된 일기장, 아빠와 아들의 관계 더 좋아져

그렇게 7개월 동안 찢어진 상태로 방치되던 새롬이의 ‘애증’이 담긴 일기장이 대수술에 들어갔습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아내와 저는 몇시간에 걸쳐 거의 완벽하게 새롬이의 기억과 추억을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틀간의 대 수술 끝에 2011년 9월 21일 새롬이의 일기장이 다시 태어났습니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지요.

새롬이에게 미안하다며 일기장을 전해주니,

“아빠, 엎질러진 물 주워 담았네?” 하고 씩 웃으며 신기한 듯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지난 추억이 되살아나는지 테이프로 정성스레 붙여낸 자신의 일기장을 넘겨봅니다. 아내도 저도 새롬이도 마음에 짓눌렸던 그 모든 것이 싹 사라지고 파란 가을 하늘 날처럼 맑고 푸릅니다.

뭐든지 빨리한다고 다 좋은게 아니라는걸 알게되었습니다. 빨래 해서 좋은게 있고 역효과도 있을 수 있는 것이죠. 자전거는 맞고 일기 쓰기는 틀린거지요. 그 사건을 계기로 아빠와 아이의 관계가 더 좋아졌습니다.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쓰면서 재미를 느끼는 바로 그것이죠 ^^

지금은 그림/글자 일기 스스로 알아서 잘 쓰는 편이랍니다. 사진에 있는 것처럼요.

어렵게 붙여놓고 기념사진 한컷!



그 사건 이후로 새롬이는 어린이집에서 내 주는 일기를 재밌게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