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이야기

아무도 몰래 필통속에 돈 넣은 이유

윤태 2010. 10. 26. 08:17

전에는 이렇게 무청속에 만원짜리를 몰래 넣어주시더니 이번엔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에 돈을 넣어주셨습니다.



주말에 시골에 가서 고구마캐기, 추수, 짚 거둬들이기 등 일하고 어제 (월요일) 아침에 올라온 이야기는 어제 포스팅을 통해 알려드렸습니다. 이것저것 참 많이도 싸 주셨습니다. 몇 박스를 들고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차가 무거워 밟아도 잘 나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많은 짐 풀어놓다가 결국 사무실 지각까지 했습니다. 햅쌀도 조금 가져와서 어제 밤에 해먹었는데 역시 반찬 없이도 쫀득쫀득하게 밥맛 나더라구요

여하튼 어제 아침 8시 조금 넘어 서서울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외곽순환도로에 접어들었을 때 막히기 시작하더군요. 바로 그때 시골 엄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길 안막히냐?”
“서울 들어왔는데 외곽순환선에서 좀 막히네.”
“김치 안쉬었지?, 꽃게 얼린거 냉동실에 넣고, 이거저것.....(계속 설명하십니다)”
“알았어요.”
“그리고 세영이 필통에 3만원 넣어놨으니 얘들 뭐 사먹여라.”
“아이구, 안주셔도 된다니까 이번엔 필통에 숨겨놓으셨어 그래?”
“헤헤헤(요거 엄마 웃음소리)

그렇습니다. 지난번 추석때 여섯 살 큰아이 필통을 시골에 놓고 갔는데 이번에 엄마가 그 속에 3만원을 몰래 넣어주시면서 필통을 챙겨 주신겁니다. 특히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갈 때면 이런식으로 기름값이라도 챙겨주려고 하십니다.

원래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야하는데 이렇게 받고 오는 겁니다. 처음에는 제 지갑에 5만원정도를 몰래 넣어 두기도 하셨지만 제가 한사코 물리치기도 하고 어느날은 옷 안쪽에 넣어두기도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기어이 돈을 찾아내 엄마께 드리고 엄마는 제게 주시고 ‘받아라, 괜찮다,’ 이런식으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지요. 결국 차가 시골 앞마당을 떠나갈 때 만원짜리를 창밖으로 휙 내던지고 출발해야 돈을 돌려드릴수가 있었던 겁니다.

어떤 날은 시퍼런 무청 속에다 5만원을 몰래 넣어두기도 하시고 또 어떤 때는 아내 가방 으쓱한 곳에 차비 하라며 몰래 넣어두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큰아이 필통 속에 3만원을 넣어주셨습니다.

제가 시골을 출발한지 꼭 1시간 정도 되면 전화를 하십니다. 어디어디에 얼마 들어있다고 가다가 기름이나 넣으라든지, 아이들 뭐 사먹이라든지.... 에이 참 엄마는 안그러셔도 되는데, 그리 하시면 제 마음이 더 아프지요. 물론 엄마 입장에서는 막히는 길 힘들게 내려와서 하루종일 일하고 올라가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농산물 챙겨 주시는 것 무조건 다 받아들고 옵니다. 이웃과 나눠먹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님이 챙겨주시는건 다 받아옵니다. 그래야 기뻐하시거든요. 아침밥 원래 잘 안먹고 뱃속이 편치 않아도 그냥 한그릇 다 먹고 옵니다. 부모 입장에서 먼 길 가는 자식에게 따듯한 아침 밥 한끼 먹여 보내는 것과 빈속으로 보내는 것은 정말 차이가 크거든요. 먹여 보내면 뿌듯함이 가득하고 빈속으로 보내면 서운함이 가득한 것이지요.

여하튼, 엄마가 작정하고 어디인지 돈을 숨겨 보내시면 저는 찾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 많은 물건들을 일일이 다 풀어서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주로 밤이나 새벽에 해 놓으시기 때문에 확인할 방법도 없구요. 참 못말리는 시골 엄마입니다. ^^

지난번 추석때 놓고간 큰아들 필통속에 3만원을 몰래 넣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