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는 맛

아빠 하면 떠오르는 모습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윤태 2009. 9. 5. 08:51




컴퓨터 줄이고 통기타 배우는 이유
-아이들이 커가니 가정적인 아빠 모습 절실

요즘 들어 통기타를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13년 전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어깨 너머로 잠깐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복학해서 친구 집에서 종종 만져본적이 있구요.

당시 배운다고 해봐야 기본적인 코드 몇 개 정도 잡을 줄 아는 정도였습니다. 주법도 그냥 제멋대로였지요. 적당히 음 맞춰가며 ‘아침이슬, 물안개, J에게’ 등 기본적인 노래를 제대로 맞지도 않는 기타 연주에 맞춰 부르던 그 시절이 있었지요.

여하튼 10년 전부터는 기타를 손에 만져 본적이 없습니다. 결혼 당시 아내가 가지고 온 통기타가 있긴 했지만 이사할 때마다 그냥 짐만 될 뿐이었습니다. 기타 줄은 녹슬고 끊어지고 엉망이었죠. 저는 줄을 끼우는 방법도 기본적은 음계를 맞출 줄도 모르는 그저 폼만 잡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달전부터 다시 아내의 통기타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줄은 아내가 끼워줬고 지인에게 음계를 맞춰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래책을 붙잡고 연습을 시작하는데 사실 막막하더군요. 군대 시절에는 적어도 10여개의 코드는 외웠는데 10년 만에 다시 잡아보니 생각나는 코드가 겨우 서너 개 정도뿐이었으니까요.

96년 2월 19일...전역 한달 남겨두고 기타를 배운다고 내무반에서 저러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사진을 보니 그 시절이 또 생각나는군요 ^^



맹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연습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코드 잡는 연습을 했습니다. 하도 세게 줄을 잡아 손가락이 피멍이 들도록 말이죠. 도저히 손가락이 아파 코드를 못잡을때까지 연습하고 하루 이틀 지나 통증이 사라지면 다시 잡았습니다.

인터넷 동영상 통해 꾸준하게 학습했습니다. 수백 가지가 넘는 코드 표를 볼 때마다 너무 헷갈려서 머리가 터질 듯 했지만 그래도 반복 연습밖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확하고 세게 코드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소리는 맑지 않고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비슷하게 음이 나오니까 아내도 즐거워하더군요. 제가 통기타를 연주하면 아내는 조심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도 신기한 듯 옆에서 그 어줍짢은 연주를 지켜보았습니다. 18개월 막둥이 녀석도 노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기타를 잡으면 옆에서 흥얼흥얼 하더군요. 또 기타소리를 듣다가 잠이 드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제 형편없는 연주가 녀석에게는 자장가로 들렸던 모양입니다.

제가 기타를 배우게 된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사실 그동안은 인터넷에 너무 빠져 있었습니다. 휴일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모습을 기타치는 아빠 모습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내도 무척 흡족한 모습입니다. 잘 치는 것도 아닌데 아내는 애써 “얘들아, 아빠 기타 잘 치지?” 하고 지켜 세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첫째 새롬이 녀석은 그저 좋아 합니다.

아이들이 점점 더 커가다보니 가정에서의 아빠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다섯 살 새롬이 녀석은 걸핏하면 “아빠, 엄마한테 잘해야 하겠다.! 라는 멘트로 저를 당황하게 합니다.

두살된 막내 녀석 허구헌날 컴퓨터 앞에 올라가...늘 봐오던 풍경이니
컴퓨터 하는 사람 아닌 기타 치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어...

18개월 막내 녀석은 또 어떻구요? 허구헌 날 컴퓨터 의자에 올라가 전원도 들어가지 않은 컴퓨터 자판을 두들깁니다. 둘째 녀석은 첫돌 되기 전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걸음마를 떼자마자 컴퓨터 의자에 올라가려고 하더군요.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빠 모습을 봐왔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큰녀석때도 그랬지만 가정에서 아빠는 ‘컴퓨터 하는 사람’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이젠 그 인식을 불식시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보여 왔던 아빠의 불성실한 모습을 통기타와 자전거 같이 타기 등을 통해 가정적인 아빠의 모습으로 재현하려고 합니다.

기타 치는 실력이 지금은 많이 어설프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아빠가 들려주는 기타선율이 기억속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노력이라는 게 기타를 잘 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아이들과 얼마나 더 친밀한 관계를 다지느냐 하는 의미도 큽니다.

훗날 녀석들이 커서도 “어릴 때 아빠하면 기억나는 게 기타 치면서 동요 불러주는 모습” 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겁니다.

기타 연습하러 이만 가야겠습니다.


손가락이 길어서 기타 잘 칠거라는 말들은 들었지만 이건 위험한 일반적인 오류지요 ^^ 식구들이 더 만족할때까지 기타연습은 계속돼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