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교사의 학습일기

"엄마가 나를 좀더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윤태 2009. 3. 26. 13:22

수업들어갔는데 혼자 울고 있는 여자 아이 왜?

어제(25일) 5학년 여자친구 집에 독서토론 수업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마땅한 모둠이 없어 혼자 수업하는 친구인데요. 들어가 보니 그 친구가 훌쩍거리고 있더군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이죠.

어디 아프니?
엄마한테 혼났니?
친구하고 싸웠니?
혼자 있어서 심심해서 그러니?

등등 어떤 것을 물어봐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만 흘리더군요.

우는 까닭을 알 수 없으니 저도 답답하고 한동안 묵묵히 바라보다가 제 마음이 조급해지더군요.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마치고 다른 수업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니까요. 여하튼 어떻게 달래고 달래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수업 중간 중간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제가 ‘오버’도 조금 했구요 ^^

독서토론 후에 글쓰기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글쓰기 주제는 공교롭게도 “나는 어린이로서 존중받고 있는가?” 였습니다. 어린이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죠. 그런데 그 친구가 쓴 글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 진솔하게 쓴 글인데요.

나는 엄마를 나를 좀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라는 아이의 심정.



과도한 학습은 엄마가 나를 무시하기 때문(?)
 

주제 : 나는 어린이로써 존중받고 있는가?

나는 무시당하는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아파서 하루만 쉰다고 그래도 못쉬게 하고 오히려 다른데 학원을 더 다니라고 한다. 그리고 집에 있는 책을 아직 다 못 읽었는데 책을 더 사서 읽게 한다. 나는 이런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엄마한테 하나만(학원) 끊어달라고 해도 안 끊어주고 뭐 사달라고 그래도 절대 안사주니까 말이다. 나는 엄마가 나를 좀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정말 진솔하게 잘 썼습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감정, 느낌을 적었습니다. 일기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기분이 울적한 것 같아 따로 발표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보고 나서 이 친구가 왜 우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과도한 학습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수업 후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원인이 나오더군요. 가장 다니기 싫은 학원이 뭐냐고 물으니 공부방이라는 곳을 지목하더군요.

그 친구 말로는 굳이 공부방이라는 곳을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시 공부방 안가고 집에서 하게 되면 게임, 오락 등을 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절대 그러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엄마하고 대화를 얼마나 나누는지 물어보니 바쁘셔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대신 중학생인 언니와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합니다.

학습에 대한 엄마와 아이 입장 모두 이해돼

그래서 제가 “왜 엄마가 학원을 보내고 책을 더 많이 사오실까?” 라고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안하더군요. 엄마 입장, 그 친구 입장에서 상황 설명 해주고 엄마도 이 친구를, 이 친구도 엄마를 서로 좀 많이 생각해주고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더불어 저 어릴적 초등학교적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면서 기분을 많이 풀어주고 나오긴 했습니다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더군요.

저도 이 친구의 학습 스트레스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 수업이 비록 주입식으로 지식이나 정보 등을 일방적으로 심어주는게 아니라 자유롭고 즐겁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아이의 고민 들어주고 풀어주는 영역까지 수업의 일환으로 보지만 학습은 학습이죠. 저희 수업엔 아이들의 경험담 나누기 섹션이 따로 있을 정도니까요.

이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 잘되라고 학원 더 보내고 책 많이 사오고 아이 입장에서는 어른들이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즉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등 꿈을 인정해주지 않아 다시 말해 그것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오로지 공부만 시킨다는 입장이죠.

엄마의 입장도 아이의 입장도 모두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 편을 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경쟁구도가 아닌 아이들간 상호 협력, 존중이라는 학습 컨셉을 지향하는 유럽 일부 국가가 아닌 이상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는 불가피한 부분이죠.

이렇게 해야만 하는 부모님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엄마와 아이가 좀더 진솔하고 잦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며 맞춰나가면서 풀것은 풀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