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하기

자전거 훔치는 자세한 방법이 국민의 알권리? 새로운 정보?

윤태 2009. 9. 17. 10:02

자전거는 단지 두 바퀴 달린 이동수단은 아니다. 고가도 많다.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은 그저 소설속의 이야기일뿐이지 현실적으로는 큰 범죄이다.



화면 흐림 처리 없이 자전거 자물쇠 따는 방법 재연하는 뉴스보도,

어제 아침 뉴스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몇 번 채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공중파 뉴스보도였습니다.

자전거 절도에 대해 취재를 했는데 범인들이 절도에 사용한 범행 수법을 아주 자세히, 재연하면서 알려주더군요. 모자이크나 흐림 처리 없이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유가 뭘까요?

굳이 절단기 등 도구가 없이 주변에 주먹만한 돌 하나만 있어도 번호키 같은 경우 0.5초만에 잠금장치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소개’하더군요. 또 자전거 페달을 이용해 간단하게 잠금장치를 열 수 있는 방법도 ‘소개’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아, 저런 방법으로 자전거를 손쉽게 훔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개가 절로 끄떡여졌습니다. 저는 어제 뉴스보도를 통해 ‘매우 유익한 자전거 절도 방법’을 배웠습니다.

혹시나 해서 이러한 절도 방법이 이용되고 있나 검색을 통해 알아봤지만 범죄와 연관된 부분이라 그런지 그런 내용은 나와있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절도를 방지하는 방법은 나와있지만 절도방법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뉴스프로그램에서 자전거 손쉽게 훔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 셈이네요. 물론 그 프로그램 입장에서는 어떤 사실이나 정보, 시청자들이 잘 모르는 방법 등을 취재, 실험해 보도한 것인데 받아들이는 입장은 어떨까요?

알권리를 충족해 만족한다고 할까요? 글쎄요. 범죄(절도)의 자세한 방법, 동작까지 알려주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일까요? 그 자세한 절도 방법을 뉴스로 내보내면서 제작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많은 국민들이 모르고 있는 방법이니 이건 특종이나 획기적인 아이템이다???

자전거 모방 절도 늘어나도 시청율만 올라가면 된다(?)

보도에 따른 부작용을 생각 못할 사람들은 아닐텐데
그런 우려보다는 획기적인 뉴스아이템과 시청율을 의식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부작용을 더 크게 생각했다면 당연히 모자이크나 흐림 처리를 해야하는게 당연지사인데 말이죠.

자전거는 단지 두 바퀴 달린 이동수단이 아닙니다. 동네 가까운 자전거 대리점에 가봐도 3~4백만원짜리 고가 자전거를 흔히 볼 수 있고 대부분 수십만원대로 결코 싼 물건이 아닙니다. 소설가 박완서 작품의 <자전거 도둑>같은 낭만적인 뉘앙스의 자전거 도둑은 아닙니다. 바늘 도둑이 아닌 꽤 스케일이 커진 절도범죄인데 우리들은 자전거 절도를 매우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뉴스에서 저렇게 절도 방법을 가르쳐주는 걸 보니 말이죠.

전에도 어떤 뉴스보도에서 경차 문따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 마지막에 ‘경차안에 귀중품 넣어두지 말라’는 ‘아주 획기적이고(?) 확실하고(?) 안전한(?) 절도 피해 방지책을 알려주더라구요. 대체 뭘 취재한 것이고 국민들에게 뭘 알리려고 한 걸까요? 그 획기적이고 확실하고 안전한 방지 대책은 다섯 살 꼬마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요.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자전거 절도 방법은 국민의 알권리가 아닙니다. 국민중 절도범죄자들에게도 그것은 알권리가 아닙니다. 단지 정보제공하는 것이지요. 저처럼 자전거 절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호기심이 발동하는데 멀쩡한 사람 여럿 자전거 도둑으로 만드는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됩니다.

공원 같은 곳에 이렇게 버려지는 자전거도 범죄를 부추기는 요소가 된다. 특히 아파트 계단 같은 곳의 고가 자전거는 문제가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