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이야기

장인어른, 장모님이 '아내의 부모님' 인가?

윤태 2010. 8. 15. 06:04

시골 부모님은 때가 되면 이것저것 챙겨 택배로 보내주십니다. 그러면 아내는 시골에서 올라온 것을 조금씩 나눠 친정에 갖다주곤 하지요.



시골서 올라온 곡식 처가에 나눠주며 내게 묻는 아내  "줘도 돼?"


아내가 쌀자루에서 쌀 두되를 덜어내 비닐봉지에 담으며 내게 묻습니다.

“이거 신길동(처가)에 갖다 줘도 당신 기분 안 나빠?”
“응, 갖다드려.”

“그런데 정말 기분 안 나빠? 혹시 속으로 뭐라고 하는 거 아냐?”
“아이, 이 사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어. 자꾸 그러면 기분 정말 나빠진다.”

아무래도 아내는 시골 시댁에서 가져오거나 부모님이 보내주신 곡식을 처갓집에 갖다 주는 일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내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슈퍼에서 사다먹는 쌀보다는 시골에서 직접 농사지은 좋은 쌀을 장인·장모님께 드리고 싶은 아내의 마음을 말이죠. 이러한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제가 기분 안 나쁘냐는 아내의 물음에 무슨 더 할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내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다름 아닌 시골의 시부모님 때문입니다. 아내 딴에는 시부모님이 뼈 빠지게 농사지은 것을 ‘처가에 마구 퍼주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시부모님께 더욱 죄송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고 처가에 갈 때마다 갖다 줄 것을 챙기며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묻는 겁니다.

시댁과 처가 부모님 용돈 얼마씩...다투는 부부들

'식구끼리 좀 나눠먹자는데 뭘 그리 따지나, 너무 각박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시골을 다녀올 때마다 부모님은 처가에 갖다 줄 것을 조금씩 따로 챙겨 주시지만 조금이다보니 아내는 우리 몫의 곡물을 조금씩 떼어 처가에 갖다 주게 되는 겁니다.

장인·장모님은 똑같은 ‘부모님’입니다. 시골 부모님 곁을 떠나온 지 거의 20년이 돼 가고 있고 지금은 여건상 시골 부모님보다는 장인·장모님을 찾아뵙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결혼한 지 9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지금도 장인·장모님 찾아뵙겠노라고 전화를 드리면 며칠 전부터 사위 맞을 준비를 하시고 막상 그날이 되면 시장 입구까지 마중 나오셔서 “아이구 윤서방 왔나?”하시며 두 손을 잡아주신답니다.

글쎄, 어떤 분들은 처가와 어긋난 일이 있어서 장인·장모님을 단지 ‘아내의 부모님’정도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좀 심한 경우이지만 말이죠. 그게 아니더라도 처가 일이라면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며 비적극적, 비협조적인 남편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드라마에서 종종 나오죠)  특히 어버이 날이나 명절 등 특정한 날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께 각각 드릴 용돈을 놓고 아내와 남편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으니까요.

처가 부모님을 단지 '아내의 부모님’이라고 좀 멀게 생각하는 남편이 있다면 먼저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위치에 따라 당신의 부모님도 똑같이 장인·장모님이 되기 때문이죠.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면 장인·장모님도 똑같은 부모님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역지사지 할 것도 없이 ‘아내의 부모’가 아닌 ‘우리의(아내와 남편)부모’로 생각하며 모시는 마음가짐이 서야하는 것이죠.

농사짓기도 쉽지 않은데 때만 되면 꼬박꼬박 택배로 보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