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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나라' 정말 몰라서 그렇게 쓰십니까?

윤태 2010. 8. 29. 07:06


“회장님 전화 오셨는데요”  전화가  높은 분인가? '오시게...
 
"전화온 데 없었나?"
"네 사장님, 오전에 회장님 전화 오셨었는데요."

사무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입니다. 회장님께서 전화를 하셨거나,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겠지 설마 전화가 얼마나 높은 분이길래 '오시기까지'한단 말인가요?

"최이사님 비도 오시는데 영업하시느라 고생 많으시네요."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오신다는 표현은 시나 수필처럼 문학작품에서 사용해야지 일상 대화에서는 부적절합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빗님이 오신다'라고 표현해야 제격이죠.

경어(존대)에 대한 잘못 표현은 통신회사나 카드회사 상담원한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30일자로 입급되셨습니다."
"3일후 자동이체 되십니다."

물론 고객서비스를 맡고 있는 곳인 만큼 최대한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응대해야 하지만 이같이 잘못된 표현은 고객들을 위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듣기 거북하게 만들 수도 있죠. 적어도 이러한 표현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는 고객에게는 더욱 더 그렇지요.


‘저희나라’ 정말 몰라서 그렇게 쓰십니까?

올바른 경어 사용, 잘 알고 씁시다

경어의 잘못 표현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번은 라디오 방송에서 MC와 소위 일류대학 교수가 전화인터뷰하는 내용을 유심히 들어봤는데, 인터뷰 도중 교수가 '저희나라'를 연발하는 게 아닙니까?

이 라디오 프로그램이 외국에서 하는 것이고 MC 또한 외국인이라면 '저희나라'가 맞을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교수가 우리나라 프로그램 MC에게 '저희나라'라고 하면, MC나 라디오를 듣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란 말인가요?

결국 MC는 인터뷰 도중 교수의 말을 자르며 '저기 교수님, 저희나라 아니고요, 우리 나라입니다'라고 알려줬는데도 '저희나라'가 또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아마도 습관이 된 모양이죠.

이밖에 일상생활에서 흔히 잘못 쓰는 경어는 '길이 많이 막히셔서 고생하셨죠, 가방 무거우신데 이리 주세요'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드라마에서 이순재가 지적한 경어법

제가 이처럼 경어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십수년전 '사랑이 뭐길래'라는 TV 드라마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드라마에서 대발이(최민수)가 연시를 사다가 할머니(사미자)께 드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대발이는 할머니가 맛있게 드시는 걸 보고는 "할머니는 감이 최고시죠?"라고 말을 했는데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던 아버지(이순재)가 옆에서 대발이의 뒤통수를 툭 치며 "야 이놈아, '시'가 뭐냐?  감이 할머니보다 더 높으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도 경어법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드라마의 그 장면이 아직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후 저는 모든 언어활동에서 경어법을 비롯한 전체적인 맞춤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높임말 잘못 쓰임 알면서도 쓰는 이유?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잘못된 경어를 사용하는 것일까요? 정말 몰라서일까요?  대학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라디오 전국 방송에 나올 정도의 지식인이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지나치게 공손한 탓입니다. 물론 이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바로잡아야 할 것은 잡아야한다고 봅니다. 옛말에도 과공비례(過恭非禮-지나친 겸손, 공손은 오히려 실례가 됨)라는 말이 있듯이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도리어 상대를 불쾌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저보다 높은 사람에게 "제 말씀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라고 말하고 나면 괜히 저를 높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말씀'은 상대높임과 동시에 자신 낮춤의 두 가지 쓰임을 정확히 알고 있지만 혹시 상대방이 '말씀'의 한 가지 뜻(상대높임)만 알고 나머지는 모를까봐 그런 것이죠. 이렇게 되면(제 말씀을 한번 들어보십시오)나는 상대방 앞에서 아주 예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경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 쓰임이 오랜 습관처럼 굳어졌고 또한 잘못 쓰이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더 갖추는, '알면서도 잘못 된 생각'을 과감히 떨쳐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