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교사의 학습일기

초등 2학년의 진심을 불량하게 받아들이다니..

윤태 2009. 7. 3. 17:56


한참 장난 좋아하고 개구진 초등 2학년 아이. 그 아이 입장에서 생각을 더 해봤어야했다. 나는 그저 어른들의 시선과 기준으로 아이가 잘못했다는 전제를 달고 아이와 응대해 버린 것이다. ㅠ.ㅠ



생각없이 튕긴 지우개 가루 내게 날아오면서 사건 시작되고..
'그냥 던진 것'의 의미를 더 깊게 생각해봐야했다


어제 수업시간(가정방문수업)에 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내용을 그대로 기술한다.

초등 2학년 남자1, 여자친구 2명 모둠 토론수업시간. 수업을 하는데 작은 지우개 덩어리가 내 어깨에 맞았다. 남자 친구가 쏜 것이다. 수업이 잠시 끊겼다.

“어? 무슨 일이지? 왜 지우개 가루가 선생님한테 날아온거지?”
“그냥 던진거에요.”
“잉? 그냥 던진거? 그게 무슨 뜻일까?”
“그냥 던진거에요. 왜요?”
“그냥 던진게 무슨 뜻인지 이야기 해보세요. 그냥 던진거?
“그냥 던진거라니까요. 왜요?”
“....”

"친구야 이런 경우는, 선생님 죄송합니다. 장난 안하고 집중할게요.” 하고 수업 계속하면 될텐데 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그 친구는 “그냥 던진 거라며, 왜요?”를 반복했다. 그 아이를 타이르는 과정에서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우울모드가 되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나는 여자친구들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잘못한 거니?”

옆에서 지켜본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혹시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아이에게 사과하고 수업을 진행할 셈이었다.

이에 대해 두 친구가 옆에서 한마디씩 했다. 어른한테 그렇게 대드는 형식으로 말대꾸를 하면 안 된다고. 학교에서도 배웠지 않았냐고. 게다가 ** 이는 반장인데 반장이 그러면 안된다며. 너 때문에 수업이 늦어지고 있다고. 왜 던진건지 이유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죄송하다고 하면 될 것 같다면서....두 친구가 남자친구에게 해주는 충고는 매우 타당해 보였다.

우는 아이 통제 못하고 급기야 어머니 부른 나 ㅠ.ㅠ
화나신 어머니..마음에 걸려 수업 제대로 못한 나

남자친구가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줬지만 아이의 울음은 더 커져갔다. 울음의 강도로 보아 뭔가 억울해하는 것 같았다. 수업은 해야 하는데 자꾸 시간만 갔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최후 수단으로 아이 어머니를 불렀다. 아이는 불려 나갔고 밖에서 잠시 큰소리가 났다.

약 10분 후 아이는 울먹이면서 어머니와 함께 들어왔고 두 아이에게 “너희들 왜 **를 놀리냐”며 많이 언짢아하셨다. 나는 다급하게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이내 나가셨다. 나머지 수업이 진행됐다. 울먹이던 남자 친구도 금세 대답을 잘 하며 적응했다. 나만 마음이 불안해져 제대로 수업을 할 수 없었다.

방금 전 방 안에서 벌어진 이 상황을 밖에서 아이가 어떻게 이야기했길래...어머니께서 이렇게 화가 나신 걸까?

수업 후 그 친구 어머니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이가 생각 없이 지우개 가루를 튕겼는데 우연찮게 내 방향으로 튄 것. 교사인 나를 겨냥하거나 일부로 한 게 아니고 그냥 생각 없이 튕긴 게 내 방향으로 튀었을 뿐이다. 그래서 반복해서 나온 이야기가 ‘그냥 던진 것’ 이다. 아이는 이 부분을 쉽게 풀어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던진 것’ 이라고 한 것이다. 표현상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 놀렸다는 부분은 두 여자친구들이 ‘반장이 그러면 안 된다’라는 것이 속상했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반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따르는 제약이 많은데 집에서 하는 수업에도 이 부분이 적용되니 아이가 스트레스가 된 것이다. 여하튼 수업시간에 지우개 갖고 장난친 것과 선생님에게 대드는 듯한 태도에 대해 어머니는 아이를 따끔하게 혼냈다고 하셨다.

다만, 이런 사태를 수업시간 내 교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어머니까지 개입하게 만든 건 아쉽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사실 어떤 변명이 필요하랴?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 시간만큼은 내가 책임지는 시간인데 어쩌면 나는 좋지 못한 일을 어머니께 떠맡긴 셈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문제해결’이라는 명목 하에. 나는 곧바로 이 부분에 대해 어머니께 사과말씀을 드렸다.

개선해야 할 점, 부족한 점, 미흡한 점을 솔직하게 지적해주신 어머니께 많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아이한테도 미안한 마음이다. 어린 아이의 마음과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즉 역지사지했어야했다. 어른의 시선과 기준으로 어른과 아이라는 상하수직, 권위적 위치에서 아이가 잘못했다고 전제하고(특히 마음속으로) 응대했지 않은가? 아이가 진심을 표출하는 언어적인 표현에 있어 그 스킬면에서 매끄럽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불량스럽게만 받아들이고 두 여자친구들까지 합세해 한 친구를 공격해버린 셈이다. 그 아이는 얼마나 억울했으랴?

물론 그 친구가 교사인 나를 응대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나머지 두 여자친구가 그 아이에게 했던 행동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역지사지 못했던 부분이 크다.

이런 일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배운다. 저 아이가 깨우쳐준게 분명히 있지 않은가?

뭘 깨우쳐줬냐고요?

역지사지 하지 않는 자세,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어른의 시선

나는 무늬만 토론교사인가보다, 그 생각이 들게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