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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2학년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윤태 2010. 9. 8. 06:55


초등 2학년 윤노영 친구. 어떻게 하면 즉석에서 술술 시를 잘 쓸수 있을까요?




초등 2학년 친구의 현실 비판과 자아 성찰 두드러진 자작시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고요? 하하, 하지만 결코 완전히 허황된 낚시성 제목은 아닙니다. 초등 2학년 여자 친구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시에서 직접 이렇게 표현했고 그야말로 초등 2학년이 느끼는 인생의 허무를 잘 표현한 것이니까요.

두 번에 걸쳐 제 수업을 들었던 성남 대원초등학교 학생이었던 윤노영 친구의 이야기를 포스팅했네요(지금은 한 학년에 대여섯 명 밖에 안 되는 시골 초교로 전학). 지난 8월 19일에 양평 남한강 옆자리로 이사하면서 더 이상 보지는 못했지만 이사하기 직전 연필로 꾹꾹 눌러쓴 자작시 두 편을 주고 갔습니다.

아무리 시적 영감이 뛰어난 친구라고 해도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 썼습니다.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자기반성, 성찰까지 시 속에 녹아내는 기술은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듭니다. 보통 어른한테 써보라고 해도 이렇게 의미부여를 하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초등 2학년 친구가 쓴 두 편의 시, 꼼꼼하게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에 대해 제가 시평을 해봤는데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평가는 하는 사람에 따라 너무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순 없지만 저는 윤노영 친구의 시를 아래와 같이 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연결돼 있는가 말이다. 정말 대단한 친구이다.


 

종이컵의 여행

초등학교 2학년 윤노영

종이컵이 바람에 날아간다
어느새 쓰레기장에 왔다
땅에 떨어졌다
나를 아이가 집어갔다
물을 따라서 책상에 놓고 갔다
나는 일부러 넘어져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부엌으로 가서 종이컵 친구들을 만나서
그곳에서 지내다가 허무하게도 다시 쓰레기통으로 갔다
뚜껑이 닫혔다
아~
나의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 섬세하고 논리적으로 표현

종이컵하면 아무렇게나 구겨져 뒹구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가벼운 혹은 하찮은 존재, 더 나아가 외로운 느낌까지 듭니다. 그런 존재의 종이컵이 쓰레기장이라는 죽음과 절망의 장소에서 한 아이가 가져갑니다. 하찮은 것이지만 그래도 뭔가 쓸모가 있다는 존재감이 한 아이를 통해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종이컵이 일부러 넘어져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부엌으로 여행을 떠나 부엌에서 종이컵 친구들을 만납니다. 외롭고 하찮던 존재에서 친구와 함께하는 귀중하고 의미 있는 삶의 공간으로 이동한 겁니다.

결국 다시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고 뚜껑까지 닫혀 버립니다. 어찌 보면 쓰레기장보다 더 절망적인 공간이거나 상황입니다. 다시는 회생할 수 없는 완벽한 단절을 의미하니까요. ‘허무’, ‘나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라는 표현을 통해 윤노영 친구의 성숙된 자아를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을 섬세하고 논리적으로 잘 풀어가고 있습니다.

낚시


내가 만든 낚싯대
테이프로 꼭꼭 붙여서
만들어진 나의 낚싯대
나의 낚싯대로 강에 가서 고기 잡을까
바다 가서 고기 잡을까?
강으로 가서 고기 잡았다
겨우겨우 6마리, 미끼가 없다
에구~
그냥 내가 강에 뛰어 들어가야지
강에 들어가서 새우 잡았다
그것도 15마리
낚싯대가 쓸모가 없구나
잡았긴 잡았는데 못 올라온다
낚싯대가 줄을 뻗어 구해주었다
낚싯대야 고마워




이용가치에 따라 돌아가는 세상 비판, 하지만 아니러니컬하게도...

정성스럽게 만든 낚싯대. 기대와 희망을 걸고 강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하는 고민은 흥에 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성과가 별로 없습니다. 미끼까지 다 써 버려 낚싯대의 이용가치는 없어진 겁니다.

윤노영 친구는 존재가치가 없어진 물건이나 사람 혹은 내게 도움이나 이득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쉽게 팽개쳐버리는 요즘 세태를 이 시를 통해 비판하는 듯 합니다. 주변은 생각하지 않고 유아독존으로 나가는 현상을 우리는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잘 나가는 법, 시에서처럼 한꺼번에 물고기 15마리를 잡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더불어 살지 않는 삶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과한 욕심으로 너무 깊이까지 들어가 강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존재가치가 없어진 낚싯대가 그것도 스스로 줄을 뻗어 시적 자아인 나를 구해줍니다. 이 부분은 이 시에서 백미로 생각합니다. 시인 자신이 직접 만든 낚싯대인데도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가치가 없으면 버리고 마는 너무나 가벼운 세상을 윤노영 친구는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시를 통해 본인 스스로가 반성을 하며 참회의 마음으로 써 내려간 듯 합니다. 자기반성과 더 나아가 성찰까지 느껴지는군요.

흔히 이 또래에 쓰는 매우 서정적이고 재밌는 동시와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여러분이 혹시 이 시를 평가하신다면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늘 많은 책을 끼고 생활한다는건 알고 있었다. 윤노영 친구 아빠가 글을 잘 쓰신다. 라디오 같은곳에 사연보내고 소개도 잘되고 선물도 많이 받으시는데 아마 아빠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