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교사의 학습일기

초등 6학년 반의 도덕적 해이

윤태 2008. 11. 20. 10:26

이맘때쯤 되면 늘 들려오는 소식이 있습니다. 수능을 끝낸 고3 일부 학생들의 탈선 혹은 일탈문제지요. 3년 동안 공부라는 압박, 압력을 받으며 고교 시절을 지겹게 보냈을 학생들도 많구요. 그 억압됐던 감정이 수능 이후 풀어지는 현상입니다. 이런 여파로 수능 끝난 고3 교실은 어수선하고 자유 분방한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원래 그래서는 안되지만 심정으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3’ 이니까요.

저는 일부의 고3 학생만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초등학교 6학년들도 ‘말년’이라고 그런 현상이 있더군요. 어제 6학년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 알게 된 것인데요,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떠들고 장난치고, 선생님은 마이크로 수업하고
-토요일엔 피씨방, 공원서 놀다가 1교시 끝나고 등교하기도..

일명 ‘날나리 반’이라고 자타가 공인한(?) 6학년 반이 있더군요. 이 녀석들이 담임선생님 수업시간에 하는 행동이 도를 넘었더군요. 큰소리로 마구 떠들고 장난치고, 돌아다니는가 하면 수업중 일방적으로 교실 밖으로 나가기도 하구요. 휴대폰, 엠피3 음악 틀어놓고, 선생님이 주의 주면 뒤에 숨어서 가운데 손가락 올려 세우고...거의 장난판 수준이라고.

이런 행동에 대해 처음에는 담임선생님이 꾸중도 하고 단속했지만 소용이 없더랍니다. 50대 여자 선생님인데 거의 포기를 했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 얼마나 소란한지 마이크를 이용해 수업을 하고 있고요. 아이들의 소란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묻혀 버리니 궁여지책으로 마이크 수업을 하게 된 겁니다. 대학의 넓은 종합강의실도 아니고....

제대로 된 수업이 될 리 있나요? 선생님은 마이크 잡고 혼자 ‘떠드는’셈이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노는 것이죠. 수업 진도를 안나갈수는 없는 상황이고 그냥 그렇게 장난판 교실이 되고 있는 겁니다. 어떤 상황인지 그림이 그려질 겁니다.

아이들의 수업태도,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체벌을 하면 문제가 생길까봐, 또 일명 ‘날나리’ 아이들이라는 점에 선생님도 아이들을 터치할 생각이 없고 아이들도 선생님이 굳이 뭐라 안하니까 마음대로 행동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이 6학년 반의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1, 3주 토요일에 정상수업이 있는 날인데도 피씨방이나 공원 같은데서 놀다가 1교시 끝나고 들어오는 경우는 부지기수라고 하더군요.

-터치 못하는 선생님, 더 자유분방해지는 아이들
-문제있지만 대안 못찾고 악순환만 계속

이 문제의 반 여학생 몇 명을 만나 그러면 안 되지 않냐고, 아무리 초등학교 다닐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해도 그러면 안되는 게 아니냐고 제가 직접 타이르고 훈계해봤지만 왜 그렇게 하면 안되냐고 오히려 제게 반문하고 따지는데 할말을 잃었습니다. 자신들이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하는데 정말 할말을 잃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버릇없다는 이유로, 통제해도 소용없다는 이유로 그냥 두는 것이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뭐라 하지 않으니까 다른 말로 만만하니까 응당 그래도 되는구나 하고 버릇없는 언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군대에서 말년 병장의 풀어지는 마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도자의 레임덕 현상, 수능 마친 고3생의 느슨한 마음 등은 흔히 보는 경우지만 ‘초등 말년’의 교실에서도 이처럼 심각한 수준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일어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일부, 극소수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싶지만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이 있을텐데 그것이 허물어지고 자타가 공인하는(?) 일명 ‘날나리 반’, ‘날나리 학생’들을 직접 대하고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더군요.

중학교 올라가면 혹여 문제는 일으키지 않을는지 하고 말이죠.

전에 공부 잘 하는 딸 대안중학교 보내는 한 엄마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할 것 같다.

일부 초등 고학년들의 탈선, 일탈, 비행문제가 종종 보도되긴 하지만 아이들은 떠들고 장난치고 선생님은 마이크로 수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