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실동화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탈출하지 않은 이유

윤태 2009. 6. 29. 12:05

에어쇼의 영광을 얻은 김대위..프로펠러에 새 들어가 전투기 추락


"김대위 축하하네. 벌써 500시간 무사고 비행이야."
"고맙습니다. 연대장님.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걱정 말게. 자네는 틀림없이 해 낼 수 있을 거야."

김 대위는 이번에 다섯 시간의 2만피트 고공비행을 무사히 마치면 내년 국군의 날 에어쇼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졌다. 공군에게 있어 에어쇼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처럼 꿈에서 그리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연대장님, 에어쇼에 참가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자 어서 준비하게."
"예."

태안반도 10월의 오전 하늘은 티없이 맑았다. 약간의 바다안개가 깔려 있었지만 상공으로 날아오르면 문제될 게 없었다. 김 대위의 F34 전투기가 가볍게 공중으로 솟았다. 

김 대위가 서남쪽으로 기수를 돌리려고 조종관을 작동하던 순간 ‘꿍’ 하는 충격이 느껴졌다. 철새 한 마리가 오른쪽 날개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프로펠러는 멈춰 섰고 전투기는 한쪽으로 기울며 급하게 추락하고 있었다. 김 대위는 본부에 긴급하게 메시지를 띄웠다.

"본부 본부, 삼네 둘공 하나. 새 들었다!!"(철새가 전투기 날개로 빨려 들어갔다)
"비오비오, 하나 둘공 삼네, 엄브렐라 엄브렐라 꽂아라(낙하산으로 비상탈출 하라)


추락 전투기, 민가로 떨어지면 김대위는 살고 주민들은 죽는다

손마디 뼈가 으스러지면서 조정 레버를 놓지 않은 이유


비상 탈출 명령이 떨어졌지만 기수는 이미 태안 시내 주택가를 향해 중심을 잃고 돌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망설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탈출하지 않으면 전투기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이었다. 둘 중 하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운명의 순간이었다.

김 대위는 그 사이 꿈을 꾸었다. 푸른 창공을 거침없이 나는 한 마리 독수리가 되는 꿈을. 그 뒤에는 여러 마리의 독수리가 지그재그로 날며 자신의 뒤를 따라 날며 공중묘기를 펼쳤다. 국군의 날 에어쇼 꿈을 꾼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린 김 대위는 상향조정레버를 힘껏 당겼다. 그러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레버가 말을 듣지 않았다. 박 대위는 이를 악물고 더 세계 잡아 당겼다. 손마디에서 ‘우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뼈가 으스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정신이 혼미해져 갔지만 김 대위는 끝가지 상향 레버를 놓지 않았다.

잠시 후 주택가 넘어 흰돌산 중턱 송전탑 밑에서 폭발음과 함께 한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눈이 부셔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강력한 빛이 끝없이 솟았다.

굉음에 놀란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손마디 뼈가 으스러지는 참으면서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김 대위의 필사적인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그곳 주민들이 무사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김 대위는 마지막 그러나 아름다운 비행을 마쳤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야하나 민가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하나 고민하던 김대위는 결국 무고한 시민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습니다.


제 후배가 공군 대위인데 그 후배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동화적인 방법으로 다시 썼습니다.
에어쇼 도중 실제로 산화한 공군 장교가 있었습니다. 이 글을 빌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른들을 위한 사실동화 연재 세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