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조각 모음

택시기사가 길 몰라 돌다가 요금 더 나오면?

윤태 2010. 8. 21. 07:26


종종 길을 잘 모르시는 택시 기사분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요금이 더 나오기도 하지요. ^^


밤 늦게까지 술 마시고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좀 도느라 택시요금이 더 많이 나왔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직장 동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택시기사가 길도 모르냐며...그렇다면 요금을 깎아주던지 처음부터 내비를 켜던지...이런 저런 불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과거 이와 똑같은 경험을 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술자리가 끝난 후 2호선 삼성행 마지막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때 시간이 00시 30분 정도. 삼성역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었고 버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역삼역까지 택시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술값으로 잔돈까지 몽땅 내준 터라 주머니엔 한 푼도 없었죠.

택시를 타면서 자고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미안하지만 10분 정도 걸리니까 택시비를 들고 오피스텔 앞에 나와 있어달라고 말이죠. 그렇잖아도 너무 늦은 탓에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목적지 눈앞에 두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택시
  택시 기사님이 길을 잘못 들었다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차병원 사거리로 가자고 했습니다. 야간 택시가 다 그렇겠지만, 택시는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달린 지 5분도 안 돼 스타타워가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때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렸습니다. 스타타워에서 당시 제가 묵고 있는 오피스텔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호를 받은 택시가 스타타워 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우측으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 신호 대기하지 않고 우측으로 질러가는 길이 있구나' 하고 생각 했습니다. "다 왔다"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려던 저는 슬그머니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한 3분을 달렸을까? 자꾸 낮선 풍경이 보였습니다. 성수대교, 신사동 등의 이정표가 보였고, 저는 기사 아저씨께 "이 길 맞아요? 아까 지름길로 오신 거 아니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어, 여기 안세병원인데…" 하시며 차병원 사거리를 가려면 두 블록 더 가서 좌회전, 또 한 블록 가서 우회전 등을 해야 한다며 불법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아저씨는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는 듯 했습니다.

방향을 돌린 택시는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잠시 후 서울세관이 나왔습니다. 논현역에 가까워졌음을 느낀 저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드디어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내가 벌벌 떨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전화 했을 때 1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아내는 미리 나와 있었던 건데, 결국 2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저씨가 길 잘못 들어 요금 더 나왔는데...다 받으시려나?

택시 요금을 슬쩍 보니 6300원. 겨우 지하철 두 정거장인데 6300원이라니? 택시에서 내리는 저를 보자 아내는 달려와 천 원짜리 두어 장과 동전을 챙겼습니다. 그런데 택시기사 아저씨는 "6천원만 주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천 원짜리와 동전을 챙기다 말고 기겁을 했습니다. 저는 아내를 뒤로 밀치며 만 원짜리를 빼앗다시피해 기사아저씨께 주고는 오피스텔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추운 날 떨면서 오랫동안 기다린 것부터 화가 나서 지하철 두 정거장인데 어떻게 해서 택시요금이 그리 많이 나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십 원짜리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왕 짠순이' 아내로서는 당연히 납득이 안 될 일이었습니다. 저는 "좀 돌아왔다"고 짧게 말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삐친 아내는 금세 등을 돌리며 돌아누웠습니다. 물론 아내는 저에게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말도 못 붙이고 누워 그날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택시 기사 아저씨. 왜 그랬을까? 내가 술이 취한 걸 알고 일부로 먼 길로 돌아온 것일까? 아님, 실수로 길을 잘못 들어 그랬던 것일까?

만약, 전자라면 요즘 불황인 탓에 기사 아저씨도 먹고 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랬던 것일까? 또 후자라면,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어느 정도 요금을 깎아주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지 시시콜콜 다 따져?

사실 그랬습니다. 6300원이라는 요금을 슬쩍 보았을 때 제 딴에는 3000원 정도만 받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6300원을 다 달라고 해도 저는 기사 아저씨와 승강이를 벌일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을 수 있고, 그게 의도적이던 실수이든 간에 이 때문에 손해 또는 이득을 볼 수도 있는 일이고…. 그냥 저의 성격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아내이기에 뭔가 불합리한 상태에서 만 원짜리를 건네며 서둘러 계산을 마치려고 할 때 아내도 앞에 나서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아내 입장에서는 모질지 않아 늘 손해만 보는 남편이 바보 같고 또 속상할 수 있는 일이지요.

여하튼, 당시 이 일은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좀 더 넓게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