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실동화

흙투성이 돼 새벽에 들어온 여동생, 무슨일이 있었던걸까?

윤태 2008. 7. 22. 09:30
월요일부터 첫 출근하는 여동생, 술 마시는데..


“명희야, 오늘 시험 끝나면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너무 늦지마. 무슨 뜻인지 알지?”
“알았어. 전화할게. 우산이나 꺼내 줘.”
“내일 첫 출근이야. 명심해.”
“알았다니까. 최대한 빨리 들어올게.”

일요일 오전 영희는 외출하는 동생 명희에게 일찍 들어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당부했습니
다. 성남 영희네 집에 살면서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는 동생 명희는 일요일인 오늘 기말시험
을 치릅니다. 일주일전에 새 직장을 구한 명희는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월요일부터 첫 출근
을 하기로 했습니다.

언니 영희가 명희에게 당부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워낙 완고한 성격의 친정아
버지 때문에 명희를 언니가 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친정 아버지는, 어두워지면 명희가 집
에 들어와야 할 만큼 엄격한 분이시기에 직장이나 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따르자 일부러 언
니네 집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보, 11시 넘었는데 처제 왜 안 들어오지? 전화 한번 해봐.”
“그러게요. 일찍 들어오라고 그만큼 일렀는데.”

영희 남편도 걱정이 되었는지 안전부절 못했습니다.

늦게까지 안들어오고 미사리에 있다. 왜??

“여보세요. 너 지금 어디야? 왜 안 들어오는 거야?”
“응, 언니. 거의 끝나는 분위기야. 한 시간 내에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
“너, 정말. 막차 끊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지금 비도 오잖아.”
“알았어. 미안해 언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

영희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영희네 집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한참 걸어 들어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대낮에도 사람과 마주치면 섬뜩할 정도로 무시한 골목이었습니
다. 그래서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1시가 되었지만 명희는 전화 한 통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명희를 방해하기 싫어
서 일부러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인데, 영희는 순간 화가 났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
다.

“야, 지지배야. 너 지금 뭐야. 몇 시인데 전화도 없이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야?”

영희는 전화기에 대고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언니. 여기 미사리 근처인데 차가 빠져서 지금 꼼짝도 못하고 있어.”

다급한 명희의 목소리 속에는 빗소리와 심한 자동차 엔진소음이 섞여 있었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야? 이 시간에 왜 미사리에 있어? 차는 왜 빠져? 음주 운전했니? 지금 누
구하고 있는 거야?”
“친구들하고 같이 있는데 그게….”
“몰라, 이것아, 출근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니 알아서 해.”

영희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속이 너무 상해 눈물까지 났습니다. 간
곡한 당부에도 늦은 시간에 미사리까지 놀러갔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영희는 화
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흙탕물 쓰고 새벽에 들어온 여동생, 밤새 무슨일이??

영희는 뜬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아침 7시가 돼서야 명희가 들어왔습니다. 명희는 비에 흠
뻑 젖었고 게다가 흙탕물까지 뒤집어 쓴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명희의 모습을 보자마자 영
희는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야, 이 지지배야. 너 정말 왜 그러니? 밤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어?”
“미안해, 언니….”

명희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너, 이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그래?”

영희는 명희를 붙들고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명희도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목
놓아 울었습니다. 흙탕물 범벅이 되어 현관 밖에 서 있던 명희 친구들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명희는 친구들이 얼굴에 묻은 흙이라도 씻고 갔으면 했지만 들
어오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명희는 그동안 마음 터놓고 지낸 언니한테 심한 꾸중을 들은 것이 너무나 속상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또 친구들을 그렇게 보내야 했던 안타까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언니 영
희는 동생이 속상해 하며 우는 모습에 마음이 상해 울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난 영희는 명
희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명희야, 얼른 씻고 출근 준비해. 너 그래 가지고 출근할 수 있겠니?”


언니줄 떡볶이 사려다가 그만...

 

영희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명희한테 너무 심하게 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희는 명희의 젖은 물건을 말리기 위해 가방을 열었습니다. 그때 검
은 비닐봉지 속의 물컹한 것이 손에 잡혔습니다. 떡볶이었습니다. 순간 영희는 울컥했습니
다. 떡볶이는 영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늘 입에 달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명희가 술자
리를 파하고 나오면서 언니 주려고 사 넣었던 것입니다.

일찍 퇴근한 영희는 명희의 흙투성이 신발을 빨았습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
문이었습니다. 명희는 그날 밤 심한 감기몸살에 열병을 앓았습니다. 옆에서 영희가 명희를
다독였습니다.

“명희야, 다음에 그 친구들 집으로 데려와. 그땐 잘 해 줄게.”
“…”

명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베개에 눈물만 떨궜습니다.

이틀 후 영희는 그 날 밤 일을 다 알게 되었습니다. 술자리를 끝낸 후 친구의 차를 타고 나
오던 명희는 길 맞은 편에 있는 떡볶이 가게를 보고 차머리를 돌렸습니다. 떡볶이를 사고
유턴을 하기 위해 도로를 따라 갔지만 유턴할 곳은 없었고 성남, 구리 방면 이정표를 보고
그대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초행길인 그 친구는 성남으로 나가는 길을 이미 지나쳐 버렸고
결국 미사리 근처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헤매던 중 이들은 밤길을 혼자 가는 한 할아버지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나오던 중
비에 젖은 좁은 논길에 한쪽 바퀴가 빠졌습니다. 그 시간에는 견인차도 오려고 하지 않았습
니다. 결국 길가에 빠진 차와 씨름하다 날이 샜고 아침이 돼서야 견인차의 도움을 받아 성
남 집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P.S  : 감동있게 읽으셨나요? 이 이야기는 몇년 전 처제와 아내에게 있었던 사실에 대화체를 넣어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감동적 사실동화 폴더에 있는 것입니다 ^^  형제간의 우애를 엿볼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