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교사의 학습일기

2년 동안 방문교사가 본 분당의 '교육열'

윤태 2008. 12. 7. 09:11


분당 정자동 일대.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일대를 연상케한다. 이 일대의 교육열은 어떨까?


나는 분당신도시 한복판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방문하며 모둠별로 초등학생 독서토론을 지도하는 방문 지도교사이다.

그런데 분당을 떠나게 됐다. 2년 1개월 동안 한 아파트 단지에서만 독서토론 수업을 지도하다가 12월 셋째주부터 성남 구시가지 주택가로 수업지역이 옮겨지게 됐다. 분당지점에서 내 연고가 있는 성남지점으로 전배를 가게 됐다. 전배 신청 하자마자 바로 자리가 났다.

강남 8학군, 서울 목동 7학군(?), 그럼 분당은?

2년 동안 분당 신도시 한복판에서 직접 경험한 높은 교육열, 기억나는 부분들을 이야기할까 한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열이 높은 곳으로 치면 강남 8학군과 교육특구로 불리는 다른 말로 프리미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서울 목동 7학군, 그리고 분당 정자동 일대 학원의 메카를 들 수 있다.

분당에서 독서토론 지도 방문교사로 일하면서 자주 들은 말이 있다.

분당 정자동에는 분당에서 부의 상징인 주상복합 건물이 있다. 굳이 그 건물의 상호를 말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처럼...

그 건물에서 수내동 쪽을 바라보면 내가 수업했던 아파트 단지가 훤히 보이는데, 그 건물에 사는 아이들이 듣는 말이 있다고 한다.

“너희들,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런 곳에서 산다.”

여기서 말하는 ‘저런 곳’은 수내동 쪽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데, 역시 만만치 않은 곳이다. 분당 최대의 중앙공원을 끼고 있는 분당 ‘노른자속’ 아파트 단지로 역시 부의 상징이지만 정자동 그 ‘건물’ 입주자들이 볼 때는 훨씬 낮아 보이는 것이다. 당연지사라 볼 수 있다.


 




45인승 학원버스 20~30대 대기...밤시간 수강생이 몇명일까?

질좋은 교육 찾아 지방에서 분당으로 (중간기착지?),
프리미엄 교육찾아 분당에서 강남으로 (최고지?)

2년 동안 생활하면서 놀랐던 것 가운데 하나가 정자동 일대 학원가인데, 저녁때가 되면 정자역 주변 도로에 45인승 학원버스가 20~30여대가 늘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러 개 학원도 아닌 한 학원에서만 저렇게 많은 학원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도대체 몇 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이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는 말인가? 계산하면 답이 나온다.

분당은 들고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다. 이사오면 기존 엄마들과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각종 학원정보와 숱한 학원을 다니는 초등생들을 보면서 지방에서 이사온 엄마는 혀를 내두른다. 말로만 듣던 높은 교육열을 직접 경험하게 됐으니 말이다. 혀를 내두르다가도 이사온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그 대열에 합류할 수 밖에 없다.

반면 분당을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6학년 중후반쯤 되면 강남 대치동쪽으로 이동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8학군에 중학교를 입학시키기 위해서이다. 분당을 중간고착지로, 강남을 최고지로 생각하며...

부가 어느정도 형성돼야 교육도 뒷받침할 수 있다. 업무 특성상 이곳 아이들의 부모님 직업은 다 알게 돼 있다. 토론하다보면 경험담을 나누는 코너가 있기에 자연스레 알게되는 것이다. 엄마와 상담을 해도 금세 나오는 부분이 바로 직업이다.

직업군을 대략 분류해보면 의사, 판사, 검사, 교수를 비롯해 공기업, 정부 기관 고위직, 대기업 간부, 사장 등이 많다. 어떤 가정은 청소, 빨래 등 살림을 봐주는 도우미 아주머니 한분과 아이만 전담하는 아주머니, 이렇게 두 분이 한집에서 일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부유한 가정일수록 프리미엄 교육 서비스 기회는 많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습에 찌들어 힘들어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어깨를 축 늘이고 바퀴 달린 가방에 엄청난 양의 학원 교재를 넣고 다니는 아이들..


6~8살, 취학전 아이들도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 영어권에서 오래 살았거나 모국어가 영어인 경우이다. 그러나 뒤늦게 후회하시는 분들도 있다. 우리 말, 우리 글이 잘 되지 않아서 말이다.



모국어 영어 등 영어 기똥차게 잘 하는데
전통, 사상, 정서 베어있지 않아 국어 안되는 아이들
"너무 어려서 보냈다" 후회하는 엄마들도 있어

방학때만 되면 해외로 한두달 단기 연수 떠나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 그렇게 되면 내 수업도 한두달 중단해야한다.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와 함께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들어갈 쯤 분당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영어가 모국어 인 아이도 몇 명 만날 수 있었다. 영어는 기똥차게 잘하는데 토론 수업을 하다보면 진땀이 난다. 우리 말 어휘력이 상당히 떨어지고 전통이나 사상 등이 베여있지 않아 글자는 읽는데 그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토론 수업하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이런 경우 교재를 한 두 단계 낮춰 수업하기도 하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혹시나 독서토론 수업을 받으면 독해, 해독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수업을 신청하는데 몇달 못가고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와 엄마 토론 교사까지 모두 진땀을 빼야하는게 사실이다.

결국엔 후회하시는 어머니들이 있다. 너무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살다오니 국어가 상당히 뒤쳐진 현 상황에 대해 말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우리말, 우리 글이 잘 안되면 훗날 어려울수가 있다. 뭐, 영어로 먹고 살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그런데 영어 잘하는 아이들은 넘치고 넘쳐나는 현실이니까..영어잘하는건 그냥 기본으로 가져가야 할 때이니까..

지금까지 2년 넘게 분당 한복판에서 토론 수업을 지도하며 경험한 분당의 ‘교육열’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혹시 자녀 교육을 위해 분당으로 이사올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참조해 볼만하지 않을까.

분당의 높은 교육열에 얽힌 내 경험담은 앞으로 한번 더 나갈까 생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