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야기

20년만에 고무신 신고 자전거 타시는 아버지 보니...

윤태 2009. 7. 27. 16:25

올해 72세인 아버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자전거였는데 요즘 아버지는 자전거 운동에 취미를 붙이셨다. 그렇게 좋을수가 없다고 하신다



'근력 운동 많이 된다'며 만족해하시는 아버지

20여년전 자전거를 짐자전거와 신사용으로만 나뉘던 시절이 있었지요. 바퀴 굵은 MTB가 나올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 시골에서는 주로 ‘무식한’ 짐자전거를 많이 탔지요. 시내에 좀 사는 아이들은 신사용 자전거를 탔구요. 좀더 발전한 케이스는 5~6단 기어를 신사용 자전거에 부착하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장치도 있었구요.

시골 아버지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습니다. 논에 물대러 갈때는 삽을 페달 사이에 기막히게 가로로 끼워 타고 다니시곤 했지요. 누구나 그런 추억은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 트럭 등이 나왔고 이제는 시골의 70, 80 어르신 내외도 휴대폰을 갖고 계시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아버지와 자전거는 그런 추억속에 그림인줄만 알았습니다. 80년대 말부터 오토바이를 타시면서 그 후 약 20년 동안 자전거 타시는 모습을 통 볼수가 없었거든요. 시골 집에 자전거도 없거니와 있다 하더라도 쓸 일이 없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지난해 막내 동생이 시골집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운동이나 하라고 자전거 한대를 사준 적이 있습니다. 예상 외 지출이니 부담이 되는 거죠. 그런데 처음에 몇 번 타다가 동생은 거의 포기를 했더군요. 아침저녁으로 운동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거든요. 그동안 시골 가면 제가 사준 새 자전거가 비 맞아 녹이 스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괜히 사줬다 싶기도 했구요.

논길, 냇가 뚝방길 따라 아버지는 달린다

그런데 이번에 시골 가서 아버지께서 그 자전거를 타시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올해 72세 적지 않은 연세입니다. 평생 농사일만 하시느라 허리 한번 펴기 힘들 정도로 사시사철 농사일에 묻혀 사시는 분이죠. 그런데 자전거로 운동을 시작하신 겁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논길을 따라 냇가 뚝방길을 돌아 약 3~4km 씩 자전거를 타십니다. 새벽에 소 여물해주고 나서 6시 반경과 저녁때 역시 소여물 주고 나서 7시부터 한바퀴 ‘나름 자전거 도로’를 따라 운동을 하십니다. 검은 고무신 신고 말이죠 ^^

처음에는 다리, 허벅지 등이 많이 아파 힘들었다 하시더군요. 계속 타다 보니 다리에 힘도 생기고 몸도 가뿐하다고 하십니다. 전에는 일하고 자면 끙끙 앓는 소리 했는데 자전거 탄 이후로는 가뿐하게 일어난다고요.

20여년전 자전거는 짐자전거 아니면 신사용 두 종류였다. 이렇게까지 최첨단화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연히 아버지도 그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셨다.


자전거 기어 변경할 줄 몰라 멈춰 서서 손으로 기어 옮기는 아버지
-20여년 최첨단 기술 따라 갈수 없는 건 당연한 일

그런데 참 재미있던 일이 있었는데요. 아버지는 그동안 앞뒤 바퀴 기어를 조정할줄 모르셨던 겁니다. 핸들 손잡이에 기어 조정하는 게 붙어 있는데 그게 그냥 자전거 손잡이인줄 알았지 기어 조정 레버인지는 전혀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아랫집 아저씨(거의 팔순)와 의논하면서(?) 앞 뒷바퀴 기어를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옮겼다고 하시네요. 또 안장이 높아서 조정해보려고 시도도 해봤는데 무조건 공구로 풀려고만 했으니 조정이 안 되는 거지요. 요즘 자전거는 손으로 안장 높이를 조정하지 않습니까?

20년 동안 자전거 기능이 얼마나 최첨단화 됐습니까? 단순한 이동수단 혹은 스포츠 레저를 넘어 ‘자전거 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규모가 커져가고 있지요. 이런 시대적 변화와 트렌드를 시골 어른들은 당연히 따라가지 못한 겁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요.

그래서 이번에 안장 조정하는 것이나 앞뒤 기어 조정하는 것을 자세히 알려드렸습니다. 알려드린대로 자전거를 타보시더니 언덕길도 가뜬히 올라갈 수 있다며 매우 흡족해하며 신기해하시더군요. 아침저녁으로 운동도 많이 할 수 있어 좋다고 하시구요.

20년만에 자전거 '재발견' 하신 아버지, 자전거는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에게 있어 자전거는 복장과 장비 제대로 갖춰 타는 젊은이들처럼 전문적인 레포츠, 여가 활용수단은 아닙니다. 고작 논길, 뚝방길이나 달리는 정도의 취미, 운동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 아버지에게 있어 자전거는 새로운 삶의 ‘재미’나 ‘재발견’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자전거 존재는 알고 계셨으니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초 경험 때와는 그 차원이 다르므로 거창하게 ‘재발견’ 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여생에 있어 대단히 큰 것을 안겨드렸다고 해야 할까요?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제 지인인 40대 가장이 자전거를 못타는데 타려고 시도조차 안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내용으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지요. 올해 72세 아버지의 ‘자전거 사랑’ 모습을 보면서 왜 그리 그 지인 생각이 나는지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아니, 남녀노소 굳이 구분할 것 없이 나름대로의 현실에 맞는 취미나 자신만의 생활을 갖고 그것에 매력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 참 뿌듯한 일 아닐까요?

아버지 보면서 느낀 것입니다.

핸들 손잡이에 기어 옮기는게 있으니 그동안 몇달동안 자전거를 타시면서 이것이 기어조정 레버인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손으로 기어를 옮기셨으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연히 그럴만 한 것이다.


이 논길을 따라, 뚝방길을 따라서 아버지는 매일 운동하신다. 늦게나마 취미생활을 시작하신게 참 다행이다. 농촌에서 취미생활 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연세 꽤 드신 분들께 있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