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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조각 모음

모유 수유 중인 아내 속이고 강력한 진통제 먹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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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육아와 가사를 동시에 하고 있는 아내, 기어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절대안정이 필요한 때이지만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가정주부가 얼마나 될까요?



-수면부족과 육아, 가사로 쓰러져버린 아내


10일, 아내가 몸살이 나도 아주 단단히 났습니다. 엊그제부터 허리가 아프다더니 이제는 손가락으로 몸 아무데나 살짝 눌러도 심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목 통증, 오한, 두통에 어지러움 등등, 숨쉬고 있는 자체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매우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어제는 눈도 못쓰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두고 일터로 나갔습니다. 이 정도 되면 긴급하게 하루 휴가내고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함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일의 특성상 임의로 휴가를 내거나 빠질 수 없기에 일터로 가야만 했습니다. (제 몸이 심하게 고장난 경우 즉 불가항력적인 경우는 빠질수도 있겠지만요)

피로가 쌓이고 쌓이더니 기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큰애, 작은애와 같이 자는데 작은 녀석이 자다말고 찡찡거리면 젖주느라 깨고, 큰녀석 오줌 쌀까 불안해 중간에 깨어 오줌 누이고 하는 등 아내는 몇 개월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피로를 좀 덜어주려고 엄마하고 자겠다는 첫째 녀석 달래고 달래고 또 달래서 다른 말로 ‘온갖 쇼를 다 해서’ 며칠전부터 저와 함께 자고 있는데요, 작은 아이가 자주 깨어 찡찡거리는 바람에 큰 녀석을 떼어내도 별로 도움은 되지 않는 듯 합니다.

낮에 중간 중간 전화해보니 아내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간신히 전화를 받더군요. 진통제라도 먹어보라고 이야기했지만 수유중이라 약은 못먹는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어갈 지경인데 어떤 약도 주사도 맞을 수 없다니....모유 수유 때문에 말이죠.

-모유 때문에 진통제 먹을 수 없다며 또 쓰러지는 아내
-모유 상관없다 거짓말로 진통제 먹이긴 했지만..


사무실에 있던 강력한 진통제를 들고 서둘러 퇴근했습니다. 제게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와보니 아내는 거의 바닥을 기고 있었습니다. 아침보다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밥에 그나물’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큰 녀석 밥 찾아 먹이고 둘째놈 이유식 해놓은거 데워먹였더군요. 그리나 정작 본인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무슨 입맛이 있겠습니까. 수저 들 힘조차 없었으니까요. 둘째 녀석은 오전 내내 보행기에서 울며 보챘다고 합니다. 안고 서서 달래야하지만 아내에게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수저 들 힘조차 없는 상황인데 말이죠.

아내에게 억지로 몇 숟가락 뜨게 하고 저는 진통제를 꺼냈습니다. 무엇보다 두통을 멈춰야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젖을 줘야하기 때문에 약을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집에 간단한 진통제가 있었지만 아내는 꾹 참고 낮동안 그렇게 쓰러져 있던 것입니다. 저는 사무실에서 가져온 진통제의 사용설명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임신중일때와 생후 100일 미만의 아기에게 모유를 수유중인 산모는 복용하면 안된다고 사용설명서에 써 있다고 이야기해줬습니다. 우리 둘째는 생후 8개월째이고 이유식을 먹고 있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고 했습니다. 상관없으니 어서 진통제를 먹으라며 따뜻한 물을 갖다놓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순전한 저의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약은 출산 전후의 기간에 상관없이 영아에게 모유수유중인 임산부는 복용하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복용할 경우 영아에게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내용도 설명서에 있었습니다. 정확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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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중인 둘째는 이유식을 먹어도 되지만 아내는 얼른 진통제 먹고 통증을 가라앉혀야 했습니다

8. 수유부에 대한 투여
이 약은 모유로의 이행이 보고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영아에서 심각한 이상반응의 발생이 우려되므로 수유부에 대한 약물 투여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수유를 중단하거나 약물 투여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는 절대 약을 먹지 않았을테니까요. 제 말에 속아 강력한 진통제 두 알을 복용한 아내. 아내의 기력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모유에 해가 되는 약을 먹었다면 하루이틀 모유수유 중단하고 이유식을 먹이면 되니까요.

진통제 복용후 2시간 정도 후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통증이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워서 끙끙대던 아내가 이제는 어느 정도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좀더 일찍 와서 약을 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사와 육아, 가능하면 아내와 같이 하기로 '마음 먹다'

그런데 젖먹이 둘째는 어떻게 됐을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젖을 물지 않고 밤을 보내게 된 둘째. 오래된 습관이 무섭긴 무섭더군요. 분유는 전혀 입에도 안대고 오로지 모유만 먹고 엄마 젖만 물고 자던 녀석. 어느 정도 칭얼거리다가 지쳐서 잠이 들 법도 한데 밤새 칭얼거려 온 식구들의 눈을 벌겋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지금 비몽사몽입니다.

아침에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아내, 밤새 불은 젖을 짜내며 언제부터 젖줘도 되냐고 묻습니다. 약국에 문의 한번 해보자고 했지요. 그러더니 집안일을 하려는 겁니다. 머리가 또 아픈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제발 좀 누워 있으라고 했습니다.

절대적인 수면부족과 낮 동안의 육아, 가사일까지 피로가 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같이하려고 마음은 먹고 있는데 마음에 그치는 경우가 많더군요. 도와준다고 해야 작은 아이 안아주거나 큰 아이와 놀아주는 일이죠. 그 사이에 아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고요. 저는 ‘일 준비’라는 명목상 같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육아와 가사를 가능한 한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나저나 10일 밤 9시에 강력한 진통제(특히 두통) 두 알 먹었는데요, 언제부터 모유수유 재개하면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