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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발견

"집주인도 어렵게 전세사는데 어떻게 보증금 빼달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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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값이 올라도, 전세값이 내려도 더 나은 환경으로 옮기기 어려운 세입자들.



넓고 저렴한 전세 나왔는데 우리집을 뺄 방법이 없다

우리집은 포화상태다. 15평 빌라에서 다섯식구가 살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가 둘이다보니 살림살이도 많아 방 한개는 창고로 쓰고 있다. 물론 거실에도 살림이 가득하다. 처제도 같이 살고 있는데 화장실이 하나다보니 그것도 애로사항이다. 어쩔수 없이 나는 큰아들과 함께 거실에서 잠을 자는데 처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잠을 설쳐야한다. 처제도 거실에서 자고 있는 나(형부)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실은 불가피하다. 그냥 북적북적 살아가는 모습 중 하나다.

화장실도 두개이고 거실도 넓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상상만 하고 있다. 세간 한쪽에 옮겨놓고 방에서 잠자고 조용하게 책도 읽을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의 환경 ^^

아, 그런데 기회가 왔다. 우리 빌라 바로 위층(3층)이 집을 내놓았단다. 부동산에 내놓은게 아니고 우리집에 직접 찾아와서 말씀하셨다.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보니 우리집의 애로사항을 알고 있는 윗층집이 직접 알려준 것이다. 부동산에 내놓으면 다른 사람이 먼저 차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3층도 전세살고 있는데 아파트로 이사간다는 것이다.

윗집은 우리집보다는 훨씬 넓다. 지하, 1, 2층은 좁은데 3층부터 꽤 넓어진다. 화장실도 두개이고 거실도 넓다. 안방도 매우 넓다. 만약 3층으로 올라가면 한쪽 구석에 박혀있는 식탁도 활용할 수 있고 방해받지 않고 방안에서 잠을 잘 수 있다. 삶의 질이 달라진다. 숨통 트이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는 더 이상 없다.

전세값 올라도 발동동, 내려도 동동, 서민 세입자들은 조용히!

그런데 복병이 생겼다. 엄청 떨어진 전세값 바로 그것이 문제이다. 몇군데 부동산에 우리집 시세를 물어보니 엄청 떨어졌다. 현 시세보다 1500만원을 내려서 전세로 내놓으면 비교적 쉽게 나갈수 있고 1000만원 내려 내놓으면 두고 봐야한단다. 500만원만 내리면 넓은 3층집 전세와 좁은 우리집 전세 가격이 같아지는 상황. 누가 같은 가격에 좁은 집에 들어오려고 할까?

설령 최대 1500만원 내려서 집이 나갔다고 쳐도 문제다. 차액나는 보증금 1500만원을 집주인에게 돌려받아야 하는데.. ㅠ.ㅠ. 집주인 역시 서울 꼭대기 동네에서 주공아파트 전세살고 있다. 주인이 근근하게 살아가는 분이라는거 잘 알고 있는데 1500만원을 어떻게 마련해 준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집은 이 1500만원까지 돌려 받아야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아파트로 이사간다는 3층 세입자도 우리한테 보증금 들고 아파트로 들어가야 하니까 이게 전부 맞물려 있는 상태다.

보기좋은 떡 그냥 구경만...집주인에게는 말도 못 꺼내고..

그렇다면 우선 급한대로 1500만원 정도를 융통해서 넓은 위층으로 이사할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여전히 1500만원은 묶여 있는 상태로 언제 돌려받을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가 없다. 물론 법적으로 강제해서 어떻게 하는 방법이 있을테지만 집주인도 어려운 처지라는 걸 뻔히 다 아는데 그렇게 하기도 좀 그렇다. 통상 다음 세입자에게 보증금 받아 그것으로 보증금을 치르는게 관례이지 않는가? 서민들 셋방살이 다 그런데... 아직 집주인에게 이 문제를 꺼내지조차 못하고 있다. 답이 없으니까...

전세값이 비쌀 때 여윳돈이 없어 좋은 환경으로 집 못 옮기고, 대신 보증금 올려주느라 뼈빠지고, 전세값이 엄청 떨어지면 집을 뺄 방법이 없어 못 옮기는 상황이다. 이래나 저래나 세 사는 서민들은 정부의 어떤 부동산 정책과 상관없이 그냥 숨죽여 꼼짝말고 살아야 하는가보다.

부동산 몇군데 둘러봤더니 거래가 거의 없단다. 가격 대비 물건 좋은 집이 전세로 나와 있어도 집을 뺄 방법이 없으니 계약을 못하고 그냥 조용히 있는 거란다. 보기 좋은 떡 먹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는 상황. 하도 여러 부동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서 내가 한마디 농담조로 던졌다.

“그럼 부동산은 뭐 먹고 삽니까?” ^^

정말 어려운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