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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조각 모음

마니또에게 담배 한보루 선물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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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선물로 줘야하는 이 심정..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사무실에서 오전에 송년회도 하고 마니또(비밀친구) 공개와 함께 선물도 교환한다. 지난 한달동안 잘 챙겨줬던 내 마니또. 어차피 두어시간 후에 밝혀질테니 사이버 공간에 미리 밝혀도 상관은 없겠다.

이 글을 써 놓고 나는 바로 사무실로 가서 시무식과 대낮 송년회를 할테니까 말이다. 뭐 송년회 끝나고 일은 해야하지만 말이다.

우리 사무실에 20여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중 남자는 나 포함해서 세명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명 남자분중의 한명이 내 마니또가 됐다. 여성이 아니라서 좀 싱겁게 됐지만 그래도 마니또는 마니또다.

내 번호를 1004로 찍어 일부러 ‘여성스럽게’ 문자메시지 보내주면 내 마니또는 문자를 들여다보며 ‘누굴까?’ 나를 무척 잘 아는 사람 같은데...그러면서 여성 직원들 이름을 차례대로 불러본다. 자신의 마니또가 분명히 여성일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내 마니또 ‘불쌍하다’

속으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내가 옆에 가서 “도대체 누가 마니또인데 그렇게 ‘여성스럽다’는 말씀인가요?” 라고 묻기도 한다.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해야 한다. ㅋㅋ

갖고 싶은 선물 목록을 공용 컴퓨터 위에 쪽지로 써 놓아달라고 1004로 번호 찍어 문자보냈는데 내 ‘남자’ 마니또는 그러지 않았다. 두어번이나 갖고 싶은 선물 문자를 보냈지만 메모를 남기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내가 그냥 골라야했다. 선물은 약 1만원대로 정하는 것이 관례이다. 뭘 선물해야하나 많이 고민했다. 넥타이? 양말? 목도리? 장갑? .... 이런 선물들은 식상하기도 하고 이미 다 갖춰놓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문화상품권 두 장 넣어드릴까 생각도 했다. 아니야, 그건 너무 성의가 없어. 돈 주면서 필요한거 사라는 것과 다를바가 없잖아.

불황 직격탄 맞은 사람들, 담배 연기에 한숨과 고민 실어 보내

뭔가 실용적이면서 필요한 것.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선물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왜냐면 내 마니또의 경제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걸 알고 있기에...불황의 여파가 직격탄으로 날아와 내 마니또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나도 직격탄은 맞지만...)

나는 결정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마니또 선물은 담배 한보르다. 가격은 2만5천원이다. 좀 쎄다. 아내는 무슨 담배를 선물하냐고 얼른 바꿔오라고 난리다. 1만원 선에서 담배가 아닌 다른 걸로 바꿔 오라고 난리다. 담배는 꼴보기도 싫다며 포장도 안해주고 있다.

내 마니또는 담배를 즐겨 피우는데 현 시점에서 담배가 실용적이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선물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불황의 여파로 긴 한숨속에 섞인 고민과 스트레스를 담배 연기에 실어 공중으로 날려보내는 모습을 늘 보기 때문이다. 비록 2~3분의 짧은 시간에 걸쳐 그것들을 잠깐 잠깐 날려보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의미도 있다.

“이거 얼마 안되지만 담뱃값이라도....”

그렇다. 담배 한값 사 피우기도 부담스러워지는 요즘, 내 마니또가 최소 2주 동안은 담배에 대한 부담감은 갖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마음 편하게 담배를 태우시라 하는 거다.

담배보다는 정말 따듯하고 정이 넘치는 선물 해주고 싶었는데, 불황이라는 기운이 내 손을 담배로 이끌었다.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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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말일날, 마니또에게 담배 선물해주는 사람이 혹시 또 있을까? 대한민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