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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는 맛

사랑의 매와 폭력의 차이는 막대기 굵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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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때 시골 가서 만들어 온 '사랑'. 다섯살 아들 녀석이 이것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 뭐 만드냐고 묻더군요. 참 맹랑한 녀석입니다.




내 허벅지를 내 스스로 매질해도 잘 안잡히는 인성



‘이것은 사랑입니다’

이번 추석때 시골 가서 만들어온 엄지손가락 굵기의 회초리에 써 놓은 글귀입니다.

회초리를 만드는데 다섯 살 아들 녀석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실실 웃으며 “아빠 뭐 만드는 거야?” 하고 물어봅니다. 뭐 만드는지 뻔히 알면서 녀석은 괜히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동안 초등생 독서토론 모둠 수업 하면서 공동탐구 토론 수업 분위기 망치는 아이들은 말로 타이르고 그것도 안 되면 회초리로 제 허벅지가 퍼렇게 멍들 때까지 때려보기도 했습니다. 이 방법 저 방법 역시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모나미 볼펜 굵기 만한 회초리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수업 태도를 잡고 있습니다. ‘탁탁’ 치는 소리가 시끄럽고 싫어 수업 태도가 잡히는 경우도 상당수 있습니다.

독서토론 수업하는 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이 ‘사랑’입니다.

“이것은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사랑은 달콤하고 부드럽고 포근하지만 선생님이 주는 이 사랑은 좀 매섭고 따갑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랑을 받게 되는지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집에서도 이 ‘사랑’은 다섯 살 아들 녀석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아들 녀석은 이‘사랑’에 대해 늘 보고 들어왔던 모습이기에 달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빠 뭐 만드는 거야?”
“뭐 만드는지 몰라? 뭐 만드는 거 같아?”
“(잠시 머뭇거리다) 사랑”
“아빠가 언제 ○○이에게 따끔한 사랑을 주지?”
“○○○ 말 안들을때.”

부모님 사랑은 달콤, 새콤, 부드러움, 선생님 사랑은 '따끔'

회초리를 만들면서 이런 대화가 오갔습니다. 말 안들을 때 사랑을 준다는 것은 아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 살 한참 개구질 때 말 안 듣고 까부는 또래 아동의 특성을 무시하고 ‘말 잘 듣는 노예’로 만들 필요는 없는 일이지요.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계속 구분하지 않을 때,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등 다섯 살 아동의 특성을 감안하되 잘잘못 구분의 기준선을 정해 알면서도 계속 저지르는 나쁜 짓이 나올 때 비로소 저 ‘사랑’이 등장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 갈 시간이 넘었는데도 만화를 보겠다고 우기고 떼 쓰며 신경질 부리는 경우, 동생과의 마찰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동생을 막 대하는 경우 등입니다. 이럴 경우 왜 어린이집에 가야하는지, 왜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살아갈 수만은 없는지 어른의 경우를 예를 들어 알아듣게 설명해줍니다. 또 아직 어려서 잘잘못을 몰라서 하는 행동의 경우를 큰 아이가 동생만할 때 있었던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면서 타이릅니다. 초보 운전자 깔보는 베타랑 운전자도 초보 시절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알아듣게끔 설명을 여러 번 했는데도 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를 때면 저 ‘사랑’을 언급해야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저것을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저것은 전시용입니다. 벽에 걸어놓고 전시효과를 통해 아이의 인성교육에 활용합니다.

저것을 공중에 ‘쉭쉭’ 소리 나게 휘두르면서 아이의 잘못을 깨닫게 한다는 건 올바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빠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회초리와 아빠에 대한 공포심이 동시에 커져 갈 뿐입니다. 굳이 꼭 매를 대야한다면 모나미 볼펜만한 굵기의 회초리로 가볍게 댑니다.

다만 꼭 혼내야하는 상황에서 저 ‘사랑’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거나 시선을 주면서 아이에게 그것을 인지시켜야 합니다. 아빠 혹은 엄마가 ‘사랑’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왜 그것(사랑)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아이가 알아차려야 합니다. 아이 자신의 행동이 지금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저 사랑을 매개체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죠. 

저것이 ‘매’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아이가 충분히 인식하고 나서 전시효과를 통한 교육용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매를 사랑으로 둔갑시키고 폭력을 교육이라고 미화시켰다며 언짢아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매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사랑'이냐 '폭력'이냐를 결정 짓는건 어떤 마음으로 사용했느냐...

그러나 한편 저처럼 어느 정도의 매, 회초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교육 특히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시의 적절하게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매, 회초리와 몽둥이는 구분을 해야 할 겁니다. 단지 그것의 굵기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갖고 쓰느냐에 따라 사랑의 매 혹은 폭력으로 구분지을 수 있을 겁니다.

초등 고학년이나 중고생들이 도가 지나친 행동으로 교권이 땅이 떨어졌다거나 반대로 교사가 아이들을 교육의 주체가 아닌 하나의 도구, 목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며 ‘콩가루 학교, 콩가루 학생, 콩가루 교사, 심지어 학부모들도 연루돼 ’콩가루 학부모’ 라는 이야기도 댓글을 통해 종종 나옵니다.

잘잘못을 따져 법리적으로 처벌을 어떻게 하네,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묻네 하는 현상을 종종 보지만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에 앞서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이 개선해야 할 일, 마음속으로 바로잡아야 할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학부모와 학생이 동시에 개선해야 할 일은 어려서부터의 인성교육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성교육 개선의 교육 일환으로 매(사랑)를 이야기하는 것이구요. 매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인성을 잘 잘아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황과 아이 특성에 따라 따끔한 것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잡아줘야 고학년에 올라가서도 그 인성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느냐에 따라 즉 환경에 따라 인성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 아이의 기조에는 가정에서의 따끔한 교육이 심어져 있어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연륜이 묻어나는 교육 관념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이되 이를 행하는 방법은 현대적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 적절히 조절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발달하고 사회구조와 인식이 아무리 많이 바뀌고 발전되어도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인간적 감성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것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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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냐, 폭력이냐는 회초리의 굵기로 따지는게 아닙니다. 이것을 사용할 때 어떤 상황, 어떤 마음으로 이용을 했느냐에 따라 사랑 혹은 폭력으로 구분되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매를 든다고 모두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