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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만든 동영상

출산 과정, 생생한 동영상으로 담다

 




갑작스런 복통, 출산 당일 경찰서부터 들른 아내


출산 예정일(4월 8일)이 12일이나 남은 3월 27일 새벽 5시경, 만삭의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전날 변을 보지 않아 배가 아픈 것인지 진통인지 혹은 가진통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와 나는 예정일이 꽤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며 그 복통이 진통일거라고는 단정짓지 못했다.


3월 27일(목요일) 일정은 아내의 운전면허증 갱신과 함께 산부인과 정기검진이 예정돼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에 촬영할 만삭 사진도 예약하기로 했었다. 그런 일정이 있던 날 새벽에 확신할 수 없는 복통이 찾아온 것이다.


새벽 5시부터 같이 지켜봤다. 1시간을 체크한 결과 10분 간격으로 복통이 계속됐다. 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산부인과로 가야하나 좀더 기다려야 하나 하고 잠깐 고민했다. 이번주 내에 아내의 운전면허증 갱신을 하지 않으면 범칙금이 나올거라는 것에 아내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진통을 하는 중에 말이다.


아침이 밝을때까지 참을 만한 진통이 계속되는 가운데, 8시 아내와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린채 간단히 식사를 했다. 힘을 써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출산전 필수사항인 샤워를 했다. 샤워 중간중간에 화장실 바닥 물때를 닦고 있는 아내를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이정도 되면, 난리법썩 떨며 산부인과를 찾는게 일반적인데, 저런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산부인과에 가기 전에 아내는 경찰서부터 들러 면허증 갱신을 하자고 했다.


산부인과 도착 1시간 20분 만에 초스피드 출산



오전 8시 50분 :  이슬이 비친 것 같았다(이슬 : 자궁 경관이 열리면서 태아를 감싸고 있던 난막이 벗겨져 생기는 갈색 출혈, 보통 출산 3~4일전에 이슬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출산의 서막을 알리는 이슬인지 뭐가 잘못돼 나오는 ‘출혈’인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갈색인 것으로 보아 ‘이슬’임을 짐작했다. 이젠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9시 40분 : 진통의 강도가 점점 세지는 가운데 산부인과 근처에 있는 성남 수정 경찰서 교통계를 찾았다. 아내는 “당장 아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면허증 갱신이 무슨 대수고 급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 와중에도 아내는 괜한 범칙금 내기가 싫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면허증 갱신을 위한 서류를 쓰는 동안 관계자들에게 “진통이 시작됐으니 빨리 좀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처리해주었다. “아이구, 세상에 이런~” 하면서 말이다. 교통계 관계자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보았으리라. 진통이 한창인데 면허증 갱신을 위해 경찰서에 찾아온 만삭의 임신부라?


10시 정각 :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당연히 정기검진 왔거니 생각한 인포메이션 간호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을 보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12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진통이 시작됐으니 말이다. 곧바로 내진을 했다. 남자 선생님 말씀하시길 “5센티 정도 열렸습니다. 한 두시간 안에 낳겠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10시 10분 : 휠체어를 이용해 위층에 있는 분만실로 옮겨졌다. 진통은 극심했지만 아내는 걸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산부인과 측에서 휠체어를 타야한다고 했다. 관장을 하고 누워있는 아내의 배 둘레에 무슨 장치를 했다. 아내의 심장박동과 아기의 움직임이 동시에 체크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10시 30분 : 조산사가 양수를 터트렸다. 7센티 정도 열렸다고 했다. 배 둘레에 있던 심박동 체크장치가 제거됐고 이때부터 힘주기가 본격화됐다. 비명을 질렀다. 엄마의 비명소리에 4살인 첫째녀석이 불안한 표정이었다. 첫째를 밖으로 내보냈다.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11시 정각 : 아기의 머리가 보인다고 했다. 조산사의 지시에 따라 힘을 주고 비명을 지르던 아내가 “안돼”하고 소리쳤다. 이어 “도와줘”라는 비명과 함께 숨이 넘어가는 듯 했다. 다시 한번 힘을 주는데 아내가 “똥 나온 것 같다”며 울부짖었다. 조산사는 변이 나와도 괜찮으니 다시 한번 힘을 주라고 했다. 아기 낳을 때 힘주다가 변나오는거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11시 5분 : 담당 남자 선생님께서 올라오셨다. 선분홍색 피가 깔아놓은 것들을 쉴새없이 적시고 있었다. 언제쯤 이 산고가 끝나는 것일까? 아내의 산고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아기는 한 발짝씩 세상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11시19분 : 온 몸에 피칠을 한 푸르딩딩한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에 이어 둘째도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건강한 사내아이다. 입으로 긴 호스를 집어 넣어 폐 속에 찬 양수 등 이물질을 제거했다. 그제야 비로소 아기는 울음을 터트렸다. 병원 도착 1시간 20분 만에 초스피드 출산을 한 것이다. 아기가 아내의 몸속을 빠져나왔지만 한동안 산고의 신음은 멈추지 않았다.

12시가 돼 서울 영등포에 계신 장모님께서 도착하셨다. 너무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장모님께서는 출산장면을 지켜보시지 못했다.



-출산 후기-


두 번의 유산을 경험한 후 태어난 둘째이다.  첫째때에는 정말 난리법석이었는데 둘째는 순탄하게 낳은 것 같다. 어떤 사람들 출산기 보면 2~3일 동안 비교적 길게 진통하다 어렵게 낳는 경우도 있고 시일이 지나 유도분만을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안돼 제왕절개로 낳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내가 자연분만을 굳이 원했던 이유는, 출혈도 적고 회복도 빠르며 아기에게도 좋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 이외 제왕절개를 하면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대단한 짠순이 아내이다.


출산 당일 첫째아이때도 봐 주셨던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오후에 퇴근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선생님께서 둘째를 받아주셨으면 해서  더 힘을 주고 서둘러 낳았다는 아내의 훗말이다.


3월 29일(토요일) 오후에 무료 만삭사진을 찍을 예정이었는데 27일에 낳아버렸으니 물건너 갔다. 경찰서에서 면허 갱신하고 나오면서 진통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며 “아이구, 만삭 사진 못찍어서 어떡하지? 대신 아기 사진 찍어서 갖다주면 공짜로 앨범 만들어 줄까?” 라고 묻는 아내이다. 출산 후에 물어보니, 그렇게 해도 된단다. 그래서 아내가 신났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푸르딩딩한 녀석을 씻어놓으니 제법 얼굴빛이 좋아보인다.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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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첫째아이(새롬이), 태어날때 출산기도 아래에 올립니다.
공감하시는 아빠들, 엄마들 보시고, 여러분들의 '출산기'도 댓글로 적어주세요 ^^ 행복했던 출산의 기억을 함께 나누어요 ^^





출산예정일 : 7월 15일

출산일 : 7월 15일 새벽 06시 03분

병원 : ○○ 산부인과

분만형태 : 자연분만

몸무게 : 2.9kg, 키 50cm, 사내아이

총비용 : 19만5천원(2박3일 입원비, 간염 예방, 분유값, 초음파 진료비 등 포함)


출산의 서막은 가볍게 올랐다

▲ 태어난지 3일째 되던 날 새롬이가 웃었습니다.
예정일을 하루 앞둔 7월 14일 새벽 3시, 이슬이 비침과 동시에 아주 가벼운 진통이 30∼40분 간격으로 계속됐다. 날이 밝고 점심때가 되자 아내는 장모님과 함께 시장에 들러 아기 모기장을 사왔다. 아주 가벼운 진통이었기에 일상생활하는 데 별로 지장이 없었다.

저녁 아홉시,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곧 힘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10시가 다 돼 아내는 샤워를 하고 난 후 배 모습을 디카로 찍어달라고 했다. 오늘 이후로는 더 이상 부른 배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불룩한 모습을 몇 장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고 한 시간 가량 이것저것 챙긴 아내는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그때부터 30∼40분 간격의 약한 진통이 20분 간격으로 짧아지면서 강도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새벽 1시에는 10분 간격으로 더욱 더 강한 진통이 몰려왔다.

아내는 10분에 한 번씩 "아이고 아파라"를 외치며 뒹굴었다. 새벽 두 시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정확히 5분에 한 번씩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몸을 부르르 떨고 이에서 빠드득 소리를 낼 정도로 심한 진통을 호소했다. 드디어 병원에 가야할 시점이었다.

골목 저 아래에서 차를 갖고 올라오는데 차가 이상했다. 정지해 있으면 시동이 꺼질 듯 심하게 떨었다. 아파 울부짖는 아내를 장모님과 부축해 차에 태우고 큰길가까지 나와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는데 역시 시동이 꺼질 듯 불안했다. 하필 이 위급한 상황에 차가 말썽일까? 어떻게든 병원까지는 가야 했다. 고장 나 주저앉을 때 앉더라도.

방법은 멈추지 않고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출산에 임박한 임산부를 급히 병원으로 운반하는 긴급자동차로 인정받기 위해 비상등을 켜고 속도와 신호에 관계없이 달렸다. 새벽 2시 30분에 병원에 도착하니 조산사 한 분이 계셨다. 우선 입원실에 눕혔다. 조산사는 나더러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내진을 할 모양이었다.

내진 결과 자궁문이 3센티미터 열렸다고 했다. 아내가 괴로워하는 가운데 태아 심장 박동 체크하고 관장까지 마쳤다. 새벽 3시 30분. 진통이 몰려올 쯤이면 아내는 "언제 나와? 언제 나와?"를 외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저 옆에서 손잡아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람이 아파서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조산사가 또 다시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4센티미터 열렸다. 3시 50분. 아내의 고통은 더 심해지고 이젠 밖에 나가 있고 말고 할 상황이 안됐다. 선혈이 줄줄 흘러나와 시트를 물들였다. 아내의 비명은 더욱 세지고 길어졌다. 비교적 큰 규모의 병원에 아내와 장모님, 조산사,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 출산에 참여하고 있었다.

4시 45분. 자궁문이 5센티미터 열렸다. 조산사는 출산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배에 힘이 들어가면 힘을 주라고 했다. 진통이 자궁문이 열리는 과정이라면, 힘주기는 아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본격적인 출산의 과정이다.

5시 정각. 조산사의 지시에 따라 아내가 배에 힘을 줬다. 울부짖는 아내의 다리와 옷이 피범벅이 됐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하면서 설마 아기 낳다 그럴까? 하며 위안을 하기도 했다. 이 고통의 순간은 언제 끝날까?

5시 5분. 조산사는 한 번만 힘줘보고 가족분만실로 옮기자고 했다. 지금까지는 입원실이었다.

▲ 동이 틀 무렵. 아내는 새롬이를 조금씩 세상밖으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내 '머리끄덩이'라도 잡아댕기면 마음이 편할 텐데...

5시 25분. 힘만 잘 주면 아기가 일찍 나올 수 있다고 조산사가 힘을 복돋웠다. 아내는 진통이 한창일 때 여지없이 "언제 나와. 언제 나와?"를 외치며 고통을 감내했다. 내 '머리끄덩이'를 잡지도 않았고, "나쁜 놈아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어?"라며 원망(?)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단지 아기가 빨리 나오기만 학수고대하며 힘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5시 30분. 아내의 코에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나는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내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았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나를 자꾸만 밀쳐냈다(나중에 물어보니, 수건을 들이대니 힘주기에 집중할 수 없어서 그랬단다).

5시 40분. 수술용 장갑을 끼고 자궁문 개봉을 돕던 조산사가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피범벅이 돼 있었다. 산모가 힘만 준다고 아기가 순순히 나오는 건 아니었다. 조산사는 조금만 더 힘 주면 아가 머리가 보일 것 같다고 했다.

5시 45분. 문 원장님이 도착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꽤 정이 든 의사 선생님이었다. 자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아내는 원장님께 꾸벅 인사를 했다. 조산사 자리에 문 원장님이 앉았고 조산사는 무엇인가 도구를 챙겼다. 원장님은 아내의 상태를 보더니, "아주 잘 진행되고 있어요"라며 여유까지 보이셨다. 나는 숨넘어갈 지경인데 여유 있는 웃음이라?

5시 46분. 아기 머리가 조금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저 아내 머리맡에서 발만 둥둥 구르며 장모님께 "장모님, 보여요? 보여요?"라고 물었다. 문 원장님은 장모님께 "뭐 볼 게 있다고 그래요?"라며 웃으셨다.

5시 47분. 아내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아가의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숨을 제대로 못 쉬니 당연히 아가한테 영향이 미치는 것이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니 아가의 심장 박동이 올라갔다. 아내는 연신 "언제 나와? 언제 나와?"를 외쳤다.

5시 59분. 회음부 절개를 위해 하지를 마취했다. 절개 순간 원장님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밥 먹듯 하는 일이지만 역시 남의 살을 찢어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가위로 조금 절개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원장님의 표정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6시 2분. 흡인기가 동원됐다. 아내의 힘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흡인기를 반쯤 보이는 아가의 머리에 대고 힘을 가했다. 아내의 고통소리는 하늘을 찔렀고, 원장님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얼른 이 고통의 순간이 지나야 할 텐데…. 나는 아내의 머리맡에서 원장님의 표정이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6시 3분. 일그러졌던 원장님의 표정이 바뀜과 동시에 아가 새롬이가 몸을 드러냈다. 온 몸에 피 범벅을 하고서 꿈틀거리는 저 아기. 이 순간부터 순서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우선 내가 탯줄을 자르고 난 뒤 아내에게 잠깐 보여준 후 코, 입, 폐에 이물질을 빼낸 것 같다.

아기가 나왔다고 출산이 끝난 건 아니었다

▲ 태어난지 10초 된 새롬이. 우선 눈을 가리고 폐속의 양수와 이물질을 제거해 숨을 쉴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조산사는 새롬이의 입에 얇은 고무줄을 집어넣었다. 한 50센티 정도 꾸역꾸역 넣었다. 순간 아찔했다. 어른들 내시경 하는 것도 아니고 왠 호스를 저렇게 길게 넣는 걸까? 잠시 후 조산사는 그 호스를 통해 입으로 뭔가를 자꾸 빨아냈다. 폐 속에 찬 양수를 빼냈다. 그제야 비로소 새롬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새롬이의 뒤통수가 마치 오이처럼 길어져 있었다. 아기의 머리가 말랑말랑해서 태어날 때 산도를 빠져나오며 찌그러지고 모양이 변한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뒷머리가 늘어나 있었다. 흡인기로 꺼내면서 많이 늘어난 듯했다(이틀 지나니까 길쭉했던 뒷머리가 완벽히 정상적인 모양으로 돌아왔다).

아기가 나왔다고 출산이 끝난 건 아니었다. 10여분 후 태반이 나왔다. 그냥 나온 게 아니라 끄집어냈다. 순간의 그 고통 또한 출산 못지않았다. 아내의 표정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태반은 많은 혈관이 뭉쳐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 양 또한 만만치 않았다. 사람의 뱃속에서 나왔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뭐랄까? 신비했다.

여하튼 아내는 병원에 간 지 4시간만에 순산했다. 어떤 사람은 스무 시간 넘게 진통하다가 도저히 안돼 수술을 했다고도 하는데, 그야말로 아내는 '스피드 출산'을 한 것이다. 물론 아내에게 있어 네 시간은 생애 최대의 고통을 맞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산고의 정도를 글로 가늠에 여기에 펼치고 있지만….

지금 시각 7월 18일 새벽 1시. 출산 후유증으로 온몸이 통통 붓고 시큰거리는 아내는 아가 새롬이와 씨름을 하고 있다. 입을 빼꼼빼꼼, 쌜쭉거리며 본능적으로 밥을 찾고 있는 새롬이를 보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든다.

글쎄, 뭐랄까? '또 다른 나'가 있으니 든든하고 뿌듯하다고 해야 할까?

▲ 산고 끝에는 엄마와 아기의 행복한 시간이 이어진다. 그런데 밤새 밥을 찾는 새롬이때문에 엄마가 너무나 힘들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