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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가르치고

치맛바람으로 경찰에 끌려가신 선생님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시절, 선생님은 그렇게 끌려가셨다. "대통령은 나라의 어른이십니다" 문구 보이시나요? 오른쪽 문제도 보세요. 그때는 이랬습니다. 이 사진은 저보다 한 살 어린 아내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1980년대 초 풍경입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논개의 마음과 같아

 

1986년? 87년인가? 벌써 25년전 일이다. 중학교 몇학년때인지도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충남 서산의 음악중학교 다닐때였다. 늦은 봄으로 기억한다. 국어 시간이었고 20대 중반의 이우경(여) 선생님께서는 변영로의 <논개>라는 시를 가르쳐 주셨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양귀비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왜장을 안고 강으로 뛰어든 의기 논개의 넋을 기려 쓴 시. 그런데 그 시를 수업하는 동안에 이우경 선생님은 약간 울먹이는 듯했다. 그 시 때문인지 그 전부터 감도는 엄숙한 분위기 때문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수업이 이우경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기억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선생님은 마지막 그 수업을 진행하면서 논개처럼 마음이 올바르고 의지가 굳어야하며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여하튼 이우경 선생님은 평소에도 보통 선생님과는 달리 우리들에게 뭔가 다른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려고 하셨다. 하지만 어린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수업후 선생님은 아래층으로 내려간 듯 했다. 잠시 후 우리들은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경찰 서너명이 이우경 선생님의 양팔과 양다리를 각각 붙잡고 번쩍 들어 연행했다. 치맛바람으로 공중에서 몸부림치는 선생님의 모습에 많은 학생들이 뛰어나가 경찰을 막아섰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 경찰은 언제나 정의롭고 올바르며 죄 지은 사람을 잡아가는 선망의 대상이고 신성한 즉경외로운 존재인데 어째서 우리 국어 선생님을 잡아가는가? 경찰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아, 이 혼란함.

 

대통령 말 한마디가 학교에 하달되던 서슬 퍼런 그때

 

그 이후 이우경 선생님은 뵙지 못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당시 학부모님들의 서명을 받았던 것 같다. 경찰에 끌려간 이우경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해야한다고 한 것 같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이우경 선생님이 생각나곤 했다.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인터넷이 보급된 2000년 이후 이우경 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근황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알았다. 25년전 왜 선생님께서 치맛바람으로 공중을 허우적거리며 그렇게 끌려가셨는지...

 

서슬 시퍼렇던 군부 독재 시절, ‘대통령은 나라의 어른이십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국어 교과서에 대통령의 사진이 대문짝하게 실리고 대통령의 말한마디가 학교 교육에 하달되던 그 시절, 이우경 선생님은 열린 교육, 참교육을 위해 당시의 교육 현실을 비판했던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핍박받았음을....

 

이 사건으로 고등학교에서 우리 중학교로 좌천 형식으로 전배를 오시고 여전히 열린교육, 참교육을 위해 투쟁하셨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열린교육, 참교육 즉 교육의 민주화를 외쳤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시엔 총칼이 먼저였으니까.

 

그 사건 이후 선생님은 잠깐 구속됐다가 풀려나 택시 운전도 하시고 길거리 교사로 활동하셨다고 한다. 이후에 복직해 교과서를 던져버리고 수업을 하고 교과서 없이 수업하는 교육 방법이나 이론 등 여전히 열린교육, 참교육을 위한 지침서 등을 책으로 내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 검색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지금쯤 연세가 53세 정도 되셨을 이우경 선생님, 어떤 학교에서 아이들의 참교육, 열린교육을 위해 애쓰고 계실까? 문득 그립다. 마지막으로 했던 수업인 ‘변영로’의 <논개>도 함께....

 

이우경 선생님!! 어디에 계십니까?

 

당시 이우경 선생님의 마음이 논개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논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아-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답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마추었네.
아-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라.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우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다..독재가 무엇인지..

 

대통령을 섬기는 것이 애국인줄만 알았다.. 그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