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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서는 대한민국

송아지 한 마리 가격=피자 한 판 가격

소 없었다면 우리 6남매 성장하지 못했다
피자값 된 젖소 수송아지...고기 생산 위한 육우, 美 수입쇠고기 보단 낫다

기축년 소띠해란다. 소 하면 생각나는 옛날이야기가 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한 노인이 준 소가죽을 쓰고 실제로 소가 돼 죽어라 일만 하다가 무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을 기억해내고 밭의 무를 뽑아 먹고 다시 사람이 돼 부지런히 일하고 살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황의정승의 [검은 소와 누런 소 중 누가 일을 더 잘 하는가] 일화도 소의 부지런하고 듬직하게 일하는 소의 상징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은 소가 일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강원도 두메산골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논이나 방송 촬영에서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일하는 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어릴적만 해도 농촌에 경운기를 비롯해 농기계가 들어오기 전 모든 일은 소가 다 했다. 논 밭 갈고 쓰리고 달구지(당시엔 구루마 라고 부름)에 볏단, 벼포대, 쌀, 두엄까지도 실어 나르곤 했다. 특히 암소는 순해서 훌쩍 올라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소 허리 다친다고 아버지께 혼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당시(초등 3~4학년)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암소가 아침부터 이상해졌다. 새끼를 자꾸 핥아주더니 눈물이 털을 적시지 않는가? 그러다가 결국 쓰러져 죽었다. 자신이 죽는걸 어떻게 알고 새끼에게 마지막 애정표현을 하고 눈물까지 흘렸을까. 당시 그 암소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골집에 살았고 15년 정도 살았으므로 수명이 다 된 것으로 당시 마을사람들은 추정했다. 소가 아닌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상황이었다.

소는 이렇게 추억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추억거리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중요한 생계수단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논농사, 밭농사 지어봤자 크게 남는게 없다. 식구들, 친척들 양식하고 나면 농사지은 것으로 ‘근근이’ 생활해가곤 했다.

목돈을 마련하는데는 역시 소였다. 우리 집도 6남매인데 대학등록금이나 결혼자금, 집 구할 때 등 목돈이 필요할 때 어김없이 소가 등장했다. 소가 없었더라면 6남매 모두의 대학등록금이나 수업료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자금, 집 구하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두 마리가 아닌 20여마리의 소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한시라도 집을 비워둘수도 없는 상황. 밤이 짧고 추운 겨울날에도 컴컴할 때 일어나 소 밥부터 챙겨줘야하는 일은 습관이 안배기면 하지 못할 일이다.

45년 이상을 외양간에서 생활하다보니 몸에 쩌든 소똥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손자 손녀 녀석들은 그 냄새가 싫다고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그 냄새의 의미를 알고 있다. 오늘날 까지 우리를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위대한 냄새라는 걸 말이다.

젖소 수송아지 가격 3만원..젖소 수송아지는  소고기 생산 위한 '육우'이다

젖소 수송아지 한 마리 가격이 3만원 이하로 떨어졌는데 이 마저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다는 소식이 얼마전 전해졌고 지금도 유효하다. 젖소 암송아지는 키워 우유를 생산하는데 목적이 있고 젖소 수송아지는 한우와 같이 소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한 육우이다. 다시 설명하면 젖소 수송아지는 소고기 생산을 위한 ‘육우’ 즉 ‘고기소’라는 점이다. 젖소와는 다른 것이다.

관련기사 : 수송아지 가격 3만원...소 한마리 팔때마다 100만원씩 손해 '망연자실'(링크)

지난 2007년 국내에서 도축한 소는 모두 68만1,695마리이고 이 가운데 18%인 12만1,980마리가 육우일 만큼 육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처럼 소고기 생산을 위한 젖소 수송아지가 수입산 쇠고기여파로 마리당 3만원 이하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송아지 한 마리 가격이 피자 한판 가격과 같다니....젖소로 키운 육우가 美 수입쇠고기보다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시골에는 지금 20여마리의 소가 있다. 사료값은 크게 인상됐는데 수입 쇠고기로 인해 소값이 크게 하락했으니 키우면 키울수록 손해가 나는 애물단지로 변했다. 떨어진 가격에도 장사꾼들이 소를 가져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비싼 사료는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말이다.

굶겨 죽일수도 없고 내다 팔수도 없는, 애물단지가 돼 버린 우리집 소.

소띠해 벽두부터 울울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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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때 되면 자기 목숨 희생해 가족에게 큰 보탬이 되는 '살신성인'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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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송아지를 낳았으므로 따로 송아지를 사올 필요가 없는 상황. 그러니 몸은 고되도 돈은 됐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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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몸은 항상 소똥으로 덮여있다. 우리를 키워내신 소똥 말이다. 소매에 묻은 것은 소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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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송아지. 살림의 밑천이라는걸 잊지 않고 있다. 지금은 애물단지가 돼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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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우리들은 이 사진과 같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