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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가르치고

'당당하자 성(性)', 저는 당당하게 수업합니다

토론 교사들도 위축되는 성 토론 수업

지난 금요일(어제)는 <당당하자 성>이라는 주제로 독서토론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일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성 관련 토론 수업 시간.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모둠으로 진행되는 수업입니다.

몸도 마음도 부쩍 커버린 6학년 남녀 모둠 학생들. 알거 다 알고 성적인 행동이나 현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날만한 녀석들로 보입니다. 그날 수업한 아이들 말이죠.

수업장소에 시간 맞춰 들어가보니 역시나 아이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습니다. 얼굴엔 비장한 표정을 지었고 평상시 같으면 약간은 조잘거리며 가볍게 저를 맞이했을 텐데 그날따라 뭔가 뻘쭘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딱풀을 이용해 피임기구를 설명해줬습니다. 토론 교사들도 이 부분에 대해선 당당하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경우가 있는 듯 합니다.



본격적인 토론 수업을 위해 미리 <당당하자 성> 이라는 제목의 교재를 읽은 것인데

짝 긴장한 모양입니다. 

첫 번째 코너는 ‘성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이야기하는 순서인데 역시나 녀석들은 입에 지퍼를 단 것처럼 함구하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하고만 있었습니다. 쭈뼛거리기만 하고....그냥 독서토론 교사인 저만 무척 당당합니다.

준비해 간 큼직한 딱풀과 콘돔을 꺼냈습니다. 먼저 콘돔을 책상위에 놓고 물었습니다.

“자, 이게 뭔가요?”

“딱풀이요.”

“자세히 보세요, 이게 뭘까요?”

“딱풀이요.”

“이것은 남성의 성기입니다.”

“......”

이번에는 콘돔을 꺼냈습니다. 유통기한이 2004년으로 사용 불가한 것입니다.

“자, 혹시 이거 본 사람 있나요?”
“아니요, 처음 봤어요.”

콘돔을 꺼내 딱풀에 씌우면서 사용법을 보여줬습니다. 성병 예방과 피임을 위해 필요한 기구라고 기본적인 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물론 콘돔 전체가 왜 이렇게 미끄러운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습니다. 시연을 하면서 설명을 하자 아이들은 진지하게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기도 하고 고개를 떨구며 피식 웃기도 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뉴스를 잘 보는 편이 아니기에 성 범죄나 잘못된 성인식, 성행동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사례들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줬습니다.

“요즘 뉴스 보면 중고등학생들이 출산후 아기를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버리는 경우가 종종 나오는데 이 친구들은 왜 아기를 낳아 이렇게 버리는 건가요?”

“키울 능력이 안되서요. 엄마한테 혼날까봐요.”

“그렇죠, 아기가 아기를 키우술 없겠죠. 그래서 갖다 버리는 수가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 중고등학생들이 왜 임신이 됐을까요?”

남자아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거 해서요.”

“그게 뭔데요? 당당하게 말하세요!”

“그거 있잖아요.....”

“성행위를 말하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피임을 못했기 때문에 임신을 하게 된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피임을 못한 걸까요?

“....”

“성에 대해 바로 알지 못해서 그런 일이 생깁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성에 대해 알지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제대로 가르쳐 주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숨기고 꺼리고 차단하고 억압하고....하다보니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성 문제가 음지에서 더럽고 변태스럽고 이상한 것으로 간주되니 더욱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미국의 고등학생들처럼 자녀가 이성 친구를 만나러 갈 때 콘돔을 건네주며 필요할 때 사용하라는 식의 성교육이 교육적으로 맞냐 맞지 않냐 하는 논란은 있지만 부모들이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 감시할 수 없고 더 이상 차단하고 숨긴다고 해서 해결되거나 막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성교육은 어려서부터 매우 자연스럽게, 아빠는 아들에게, 엄마는 딸에게 해주시면서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접근해 교육하는게 미래의 성범죄나 폭력으로부터 예방할 수 있는 기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성에 대해서도, 친구들의성에 대해서도 고민한적이 없다며 글쓸게 없다고 하지만 어머님들과 이야기해보면 벌써 그 친구의 성적 행동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