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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가르치고

팬티 차림 여교사 훈계, '선정성' 말고 '교육철학'으로 보자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휴대폰을 훔쳐간 학생을 찾아내기 위해 펜티 차림으로 6학년 아이들 앞에서 훈계를 한 여교사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네요. 옷을 벗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정직하고 투명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의미의 ‘교육 철학’을 담은 듯 한데요, 대부분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기사를 보니 평소 아이들 교육에 힘쓰고  노력하면서 이러한 돌발행동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수업 첫날 시인들의 시 이론을 공부하면서 시는 측정하는게 아니라면서 쓰레기 같은 이론이니 찢어버리라고 하는 키팅 선생님,

또한 선생님의 교탁에 올라가게 해서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더 다양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키팅 선생님 말이죠. 틀에 박힌 교육을 강요받는 아이들에게 그 기준에서 벗어나 뭔가 신선하고 독특한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키팅 선생님의 교육 철학을 보면서 “아, 정말 환상적이고 이상적인 수업 방식이고 교육 철학이구나”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역시 현실적이진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업전 책상에 올라가게 한 후 내려와서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왜 선생님이 너희들을 책상위에 올라가라고 했는지 이유를 쓰세요" 라고...



수업전 밥상인 공부상에 올라가라고? 미친 선생님 아냐?


저는 사교육 현장에서 독서토론 수업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방문도 하고 센터에서도 수업을 하는데 요즘 방문 수업 현장에서 키팅 선생님의 교육 철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좀 독특한 방식입니다.

먼저 수업전에 저는 아이들에게 책상에 올라가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 하며 책상(주로 밥상으로 이용하는 공부상)을 올라갔다가 잠시 후 내려옵니다. 간혹 올라가기를 꺼려하는 학생이 있으면 제가 책상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아이들에게 “왜 선생님이 너희들을 공부하는 책상에 올라가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워크북 뒷장에 써보세요”라고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이 독서토론 선생님이 왜 그러나? 혹시 점심을 잘못 드셨나? 이 수업방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설명이 없고 아이들이나 어머님들의 호응이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이른바 ‘미친 교사’가 되는 겁니다.

여하튼 아이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다양합니다. ‘책상이 부러지는지 보려고’, ‘누구 키가 더 큰지 보려고’, ‘지구 건너편을 보려고’,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려고’ 등등...취지에 근접해 쓰는 친구도 있고 나름대로 자기만의 표현방식으로 이유를 쓰는 친구도 있습니다.

“책상에 올라가서 보니 앉아 있는 친구 뒤통수도 보이고 등짝도 보이며 책상 위에 있는 종이 상자의 내용물도 보입니다. 마주하고 있을 땐 보이는 것이 사실이며 진실이고 전부인줄 알았는데 선생님도 올라가 보니 여러 가지 보이지 않던 것을 다양하고 폭넓게 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 생활하는데 이렇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생활에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반 친구들에게도 한번 해보세요. 책상 위에 올라가보라고 하고 왜 그랬는지, 물어보세요, 아마 여러분들이 논리적으로 잘 풀어 설명해주면 친구들이 여러분을 보는 눈이 새로워 질 것입니다.”


저의 멘트는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납니다. 수업 후 어머님과의 상담에서 키팅 선생님으로부터 얻은 교육 철학을 이렇게 제 수업시간에 적용했다고 설명드리고 아이들의 반응을 말씀드리면 어머님들은 고개를 끄떡이십니다.

다시 속옷 차림 여교사 훈계 이야기로 넘어오겠습니다. 무너지는 교권과 교실 붕괴라고 불릴만큼 인성과 도덕성이 결여된 공교육의 현장이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교사를 폭행하는 학생 소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고, 학생들에게 가혹행위하는 교사 소식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치와 모욕 감수하며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건 뭘까?

저는 40대 초반의 여교사가 굳이 팬티 차림으로 정직과 깨끗함을 훈계해야 했는지 나름 이해가 됩니다. 매를 댈수도, 얼 차례 등으로 체벌을 하기도 불가능한 지금 공교육의 현실에서 그 담임 선생님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담아 잠깐 동안의 포퍼먼스를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신적인 문제나 질환이 아니라면 어떻게 학생들 앞에서 반나체 차림으로 훈계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성으로써의 수치와 모욕 보다는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일념이 더 컸기에, 그만큼 아이들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러한 ‘과도한 훈계’ 가 나온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특히 이번 사건이 절도인 만큼 세상버릇 여든까지 가고 소도둑이 바늘 도둑 되는 것인만큼 확실하고 정확하게 이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신념이 강한 탓에 나온 교육 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취지를 위한 이번 반나체 훈계의 방식이 과도하거나 지나치다는 여론은 피할 수 없으나 그 겉모습만 보고 또 교육이나 그 안에 담은 교사의 철학은 보지 않고 선정적으로만 여기며 ‘황당, 충격, 비상식’ 등의 기사 제목을 뽑으면서 해당 교육자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했는지 아직 그 교사의 소명을 들어보지 않았으니까요. 언론은 온통 ‘반나체 훈계’에 초점을 맞춰 돋보기 처럼 불을 내고 활활 타오르는데 부채질만 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