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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가는 현장

절도 장면 확신하면서도 신고 못한 이유


이런 경우 생계형 절도에 포함될까요?


지난 화요일 저녁, 연휴 마지막 날이죠. 추석때 성묘 다녀와서 구두에 흙이 많이 묻고 지저분해졌습니다. 집안에서 흙먼지를 털기 좀 그래서 집 앞 골목으로 구두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는데 종종 봐오던 폐지 줍는 아저씨가 리어카를 세워놓고 열심히 폐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인지라 제법 많은 폐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집 맞은편은 공사가 한창입니다. 공사 현장을 가림막으로 가려놓아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수가 없죠. 여하튼 추석 연휴라 인부들은 나오지 않았고 그 골목앞으로 종종 오가는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컴컴한 공사장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추석 연휴, 텅빈 공사장 안에 누군가 있다

바로 그때 가림막안에서 ‘쟁그랑 쟁그랑’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짐작했습니다. 그 컴컴한 공사현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이죠. 리어카를 세워놓고 폐지를 줍는 아저씨라는 걸 말이죠.

도대체 컴컴한 그 안에서 뭘 하시나 궁금했습니다. 나무와 철근으로 가득한 공장에서 무슨 폐지가 나올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살짝 구멍뚫린 가림막 사이로 들여다 봤습니다. 아저씨는 제법 굵은 철근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다 쓰고 남은 철근이 아닌 사용하려고 이미 기역자로 절단해 놓은 철근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있었습니다.

짐작으로는 건축자재를 불법으로 가져다가 고물상에게 주려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제재하기가 좀 그랬습니다. 철근을 가지고 현장 밖으로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구두닦기에 열중했고 잠시 후 ‘쟁그랑 쟁그랑’ 소리는 머졌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컴컴하고 험악한 그곳에서 뭘 하시는 거지? 온갖 쇠파이프와 나무 등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는 저 안에서 조용히 뭘 하고 계신 걸까? 앉아서 잠깐 쉬고 계시나?

다시 한 번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폐지 줍는 아저씨는 철근 모으는 곳에서 약간 옆으로 이동을 해서 반듯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위에서 거푸집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토막이나 철근, 쇠파이프 등이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울퉁불퉁하고 거친 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혹시 건강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약간 위치를 이동해 아저씨 정면에서 들여다봤습니다. 심장이 우렁차게 뛰고 있음이 희미한 가로등 빛에 보였고 들여다보는 순간 아저씨는 아주 살짝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상대로 폐지줍는 아저씨는 건축현장의 철근 일부를 싣고 갔다

밖에 여전히 리어카는 세워져 있고 아저씨는 누워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철근을 싣고 갈 요량 같았습니다. 구두를 다 닦고 지금 있던 일을 트위터에 올려봤더니 어떤 분이 112에 신고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어떤 물증도 없는 상태이고 어디 사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골목을 종종 다니시며 폐지를 줍는 분이라 선뜻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은 안나더군요. 심증만 있지 물증도 없구요.

밤이 이슥할 무렵인 두어 시간 후 창밖을 내다보니 아저씨의 리어카는 없었습니다. 철근을 실어갔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 시간에 다시 골목으로 내려가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짐작만 할 뿐이었지요. 공사장에서의 건축자재 절도 사건 정말 많이 발생하고 있고 요즘에는 하수구 뚜껑, 소화전 손잡이, 다리 난간, 철제 대문까지 떼어가는 세상이잖아요.

다음 날 아침 일찍 현장 소장님을 집 앞에서 만났습니다. 지난 밤 혹시 철근이 없어졌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작업하려고 규격에 맞게 절단해 놓은 철근이 없어졌다고요. 그리고 그것이 누구의 소행인지도 소장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폐지 아저씨께 말씀을 하셔야지 안 그러면 계속해서 철근 등 건축자재가 밤마다 없어질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소장님은 이웃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더군요. 그래도 이건 ‘절도이고 범죄다’라고 설명 드렸지만 소장님은 철근이 없어지는 문제보다는 밤중에 혹시 폐지 아저씨가 그곳에 들어갔다가 다치면 어쩌나 그것을 더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그것이 더 큰 문제이긴 합니다. 인명 사고가 나면 현장 소장에게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그나저나 이러한 경우를 생계형 절도라고 해야 하나요? 범죄인걸 확신하면서도 신속하게 제재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니 말이죠. 마음씨 좋은 현장 소장님도 대단하십니다. 여느 소장님 같으면 고래 고래 소리 지르며 멀찌감치 쫒아내기 십상인 상황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