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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결혼기념일 깜빡 잊고 아내와 말다툼까지 했네요

결혼 기념일날 깜빡 잊고 아내와 다툼까지 하다니..


오늘 아침 이사문제로 아내와 다툼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사소한 문제인데 말이죠. 굳이 사무실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인데 다툼을 빌미(?)로 사무실에 나갔습니다.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갓 다섯 살 된 큰아들이었습니다.

“아빠, 오늘 결혼기념일인데 언제 들어와요?”

아뿔싸! 2월 3일 바로 오늘이 결혼기념일인데 깜빡 잊은 것도 모자라 다툼하고 신경질을 내며 나갔으니...

특별히 이벤트를 준비한 것도 없네요. 까먹고 있었으니 말이죠. 저녁때 조그만 케익이나 사와야겠습니다. 아이들이 케익에 촛불 켜놓고 노래부르는거 좋아하니까요.

결혼기념일 생각하니 그 아련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결혼식 한 달 반 전인 한겨울에 강행한 야외촬영과 결혼식날 술이 곤드레 만드레 취해 정신 못차렸던 재밌는 추억담.

지금부터 풀어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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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중순, 야외촬영 모습, 호수에 얼음 얼은거 보이십니까?



야외촬영날 겨울바람이 드레스를 파고들다

2001년 12월 중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추운 영하의 날씨였습니다.

결혼식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12월 한겨울에 야외 촬영이라.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그러나 사진을 좋아하고 추억 곱씹기를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 당시 야외 촬영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 때문에 짠순이 아내와 마찰도 있었지만 제 고집은 꺾지 못했습니다.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실내촬영을 끝낸 저희 일행은 과천 서울랜드로 향했습니다. 야외 촬영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친구 녀석은 갑자기 펑크를 내고 장모님과 처제가 따라 나섰습니다. 도착한 서울랜드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겨울날 볼 게 없으니 당연했지요.

사진사의 주문대로 열심히 포즈를 취하며 촬영을 계속했습니다. 저는 긴 팔의 턱시도를 입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었는데 아내는 반팔 차림에 구멍이 숭숭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을 했습니다.

겨울바람이 살 속을 파고드는가 하면 차디찬 돌에 앉아 웃음을 띠며 다정한 모습을 했습니다. 온몸은 덜덜 떨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으려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얼어버린 얼굴을 손으로 비비고 또 입 운동을 해가며 촬영에 임했습니다. 한컷 한컷 촬영이 끝날 때마다 장모님과 처제는 준비해간 이불로 아내를 둘둘 말았습니다. 결국 처제가 한마디 하더군요.

“언니, 이렇게까지 하고 싶어?”
“(덜덜 떨며) 니 형부한테 물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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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배경도 없는데..그 추운날 저 상태로 야외촬영이라니..


드디어 점심시간.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아내는 진작부터 밥을 찾았습니다. 뜨끈한 꼬치국물을 우선 후루룩 마셨습니다. 곧바로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켰습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화사한 화장을 한 아내는 정신없이, 시뻘건 김치찌개를 퍼먹었습니다. 물론 웨딩드레스 위에 잠바를 걸쳐 입긴 했지만 여하튼 웨딩드레스 복장이었습니다.

점심 후 우리는 얼음이 하얀 호숫가에서 촬영을 계속했습니다. 그날 촬영 후 아내는 며칠 동안 감기몸살을 앓았습니다. 당연했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고생을 한 만큼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앨범이 나왔을 때 적잖이 실망을 했습니다.

사진은 잘 나왔는데 주위 배경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화사한 꽃도, 푸릇한 나무도 없이 황량한 겨울배경이 너무 외로워 보였습니다. 후회해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없는 것 보단 나았으니까요. 지금도 종종 야외촬영 앨범을 펼쳐봅니다. 여름에 앨범을 보고 있노라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요.

결혼식날 술에 취해 테이블에 벌렁 드러누운 사연
신랑은 쓰러지고 신부는 신랑 친구들과 술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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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3일 결혼식 후 피로연에서 쓰러진 제모습

2002년 2월 3일 일요일 오전 12시 동대문 ○○웨딩홀, 정신없는 결혼식이 끝났습니다. 결혼식 전날 시골 가서 어르신들 모시고 바로 서울 올라와 한숨 못잔 얼굴로 결혼식을 치른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피로연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짓궂은 친구들이 장난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홍서범 조갑경의 ‘사랑의 대화’도 불렀습니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권하는 술을 돌아가며 마시다보니 저는 어느새 비틀비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맥주 석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지며 정신을 못 차립니다. 술 주정은 전혀 없고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견디지 못하고 무조건 쓰러져 자는 것이 저의 술버릇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스무 잔 이상 마신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아내가 말리고 야답법썩을 떨었지만 강력하게 권하는 친구들을 뿌리칠 순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테이블 위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의자를 연결해 누울 자리를 마련해줬습니다.

누워 있는데 비몽사몽 주변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노래방 소리, 술잔 부딪히는 소리, 떠드는 친구들 목소리, 깔깔대는 아내의 웃음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들려왔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지, 내가 결혼을 했는지, 내가 왜 이런 모습으로 여기 누워 있나 등등 … 생각인지, 느낌인지 혹은 의지인지 모를 야릇한 기분이 맴돌면서 저는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날 아내는 취해 있는 저를 대신해 친구들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날의 사건을 두고 아내는 결혼 6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안주거리로 삼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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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살다보니 결혼 기념일을 깜빡 하는 날도 있네요


 
저는 그날 김포공항으로 가는 승용차안에서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습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제 자신이 한심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야 할 시간에 취해 잠만 자고 말았으니까요.

그때 그 일은 사진과 함께 재밌는 추억거리로 남았답니다.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제 모습을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긴 사랑하는 아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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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때는 이런것도 자주 만들곤 했는데...지금은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