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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탤런트 故 김흥기 님 아들과 군생활한 추억을 떠올리며..


탤런트 김흥기 님께서 6일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무인시대, 제국의 아침, 용의 눈물 등 사극에서 중후한 멋을 풍기던 분이셨죠. 2004년 대학로에서 연극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하면서 시청자들의 기억속에 서서히 멀어져 간 고 김흥기님.

2004년 투병 이후 종종 고인의 근황이 개인적으로도 궁금했습니다. 호전은 좀 됐는지 말이죠. 그때마다 기사검색을 통해 고인의 근황을 살폈지만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중이라는 기사만 볼 수 있었습니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언제라도 나오셔서 이혼 신청 부부들을 잘 다독거려 줄 것만 같은 고인.

저는 지난 1994년~96년 사이 1년 넘게 고인의 아드님과 한 내무반에서 생활했습니다. 아버지 고 김흥기님과 판박이처럼 똑같이 생긴 아드님이죠. 언론에도 알려졌지만 고인의 아드님은 현재 KBS에서 PD로 근무하고 있지요. 김진원 PD 라고요. 저도 언론 통해서 PD로 있는 걸 알았지 제대 이후 13년 동안 한번도 연락은 한적이 없습니다.

나이는 저와 동갑인데 제가 그 친구보다 1년 정도(?) 선임병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친구가 자대에 처음 들어온 날 탤런트 아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요. 그때 그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네 아버지 어떤 드라마에 나오셨나?”

“드라마는 잘 안나오시고 전설에 고향에 나오셨습니다. 주로 연극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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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넘치던 연기, 부디 편안한 곳으로 가시길....

그랬습니다. 당시 일반 드라마에 뵌 기억은 없고 전설의 고향에서 뵌 기억이 나네요.

그 친구 성실하게 군생활 잘 했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물어보기 전까지는 한마디도 입밖에 내는 일이 없었고 늘 뛰어다니는 모습이었죠. 다른 곳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제가 근무했던 곳은 일정 이상 짬밥이 되지 않으면 걸어다닐 수 없었습니다. 밥 먹을때도 PX 갈때도 일단 내무반만 벗어나면 그 어디를 가더라도 뛰어다녔던 것이죠. 한마디로 군기잡는 방법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군 생활했던 곳이 신병교육대라 고참들이 조교였고 참 많이도 시달렸습니다.

그생각 나네요. 빨간 체육복 입고 허리 꽃꽂이 세우고 TV를 보는데. (시선은 TV를 향하고 있지만 사실은 TV 아래 TV 받침대를 보고 있어야 합니다. 만에 하나 TV에 빠져있다가 고참이 부르는데 즉각 달려가지 않으면 일이 벌어지니까요) 병장 하나가 손가락 두개를 입가에 갖다 댔죠. 그 친구가 번개같이 달려가 병장의 손에 담배를 들려주고 불을 붙여준다음 날다람쥐처럼 뛰어가 재떨이를 그 앞에 대령(?)하고 원위치 하는 모습이요. 물론 그 친구는 당시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병장들을 위해 접대용으로 준비해야 했죠. 결국 TV를 보는게 아니라 고참들의 시중을 위해 TV 보는 자세로 대기를 하고 있었던 거죠. 장교 등 간부가 내부반에 들어올라치면 “야야, 허리 힘빼고 팔 풀고 있어. 자연스럽게 있어.”

벌써 15년 전 일이니 이제는 추억거리입니다만, 고인의 아들과 적잖은 시간 동안 어렵게 군생활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네요.

김형!

아버님 일은 정말 애통합니다. 개인적으로나 배우, 연기자라는 공적인 영역에서나 아버님의 타계는 개인적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사극, 연극계의 큰 손실이기도 하네요.

부디 아버님 좋은 곳으로 모시고 힘내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제는 고참도 후임도 아닌 동갑내기 친구이자 늠름했던 김형께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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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이사하면서 앨범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김형의 당시 얼굴을 찾을수가 없다. 이 사진은 논산훈련소에 취재차 들어갔다 촬영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