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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발견

남자가 산후조리원에 드나들다보니....

아내가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으로 들어간지 5일째입니다. 3개월전 10만원 내고 예약을 하고 출산 후 막상 조리원에 들어가려니까 거리낌이 있었습니다. 전에 TV에도 나왔습니다만 문제시 됐던 것중에 조리원에서 집단으로 장염에 감염된 사례가 있었지요.


또 조리원 도우미분들이 아기를 잘 돌봐주실까 하는 걱정도 되었구요. 고생스럽더라도 집에서 장모님께 산후 조리를 부탁드릴까 생각도 했습니다. 10만원을 버리고 집으로 들어갈까 고민하다 결국은 조리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조리하면 큰 아이(새롬이)가 송아지처럼 뛰어다니고 까불때라 위험스럽기도 하고, 10만원이 아깝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가본 산후조리원. 시설도 깔끔하고 도우미 분들도 항상 싱글벙글한 웃음으로 저를 맞이하며 아기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스마일 도우미 분들을 보니 제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고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기를 돌보는 것 같았습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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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첫째 새롬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아내 모습

산후조리원서 마주치는 모유먹이는 산모들 처음에는 민망

그런데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주로 퇴근해서 저녁때 조리원에 들르는데 들어가자마자 거실에서 모유를 먹이는 산모들이 눈에 딱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너무 민망해 몸은 앞으로 가는데 고개만 90도 오른쪽으로 돌리고 황급히 아내 방으로 들어가야하는 참으로 어색한 풍경도 펼쳐졌습니다. 거실에 들어설때 정면으로 모유먹이고 있는 산모가 보이면 민망, 등뒤를 보이고 젖먹이는 산모가 있으면 다행, 거실에 아무도 없으면 안도의 마음이 들더군요.


어제(2일)는 조리원에서 저녁밥을 배달시켜 먹었는데(이곳 조리원은 남편들이 밤에 잠을 잘 수 있고 가족들 배달 음식 허용되는 곳임) 배달하는 아저씨께서 거실쪽으로 못 들어오시고 문앞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제가 황급히 달려가서 음식을 받았지요. 배달하는 아저씨 말씀하시길


“안에까지 들어가기 좀 그래서...” 라며 말끝을 흐리셨지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다. 음식을 받아들고 이번에는 머리를 숙여 바닥을 보며 무척 빠른 걸음으로 아내 방으로 들어와 버렸지요.


산모들은 전혀 신경안써...모성애는 아름답다

배달된 저녁을 먹으며 아내와 이야기했습니다. 조리원 들어오기가 무척 민망하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아내는 제가 이상하다는 겁니다. 모유 먹이는 산모들은 남자든 여자든 그게 누구든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이지요.


사실 그랬습니다. 제가 거실에 들어올때 산모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몸을 가리거나 방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누가 들어왔는지 무조건 반사적으로 거실 입구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열심히 젖을 빨고 있는 아기의 얼굴만 사랑스럽게 내려다 볼 뿐이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저만 산모들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그 이야기를 하더군요. 낮에 거실에 앉아 모유를 먹이다보면 산모들 남편들이 종종 들어오는데 아내도 다른 남편들 시선에 상관없이 젖을 먹인다고요.


산후조리원에서 산모들이 신생아들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은 무척 당연한 모습인데 저만 민망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전에 지하철에서 모유먹이는 산모를 보고 몇몇 청년들이  “공공장소에서 더럽다, 아줌마는 다 그러냐, 화장실에서 먹여라” 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지요. 그 사건이 생각나네요.


(다음블로거 몽당연필님의 글 : 댓글 841, 추천 522점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401550?rec=2


물론 지하철 안 모유수유는 산후조리원에서 모유수유하는 산모들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요.


산후조리원을 드나들면서 깨달은바가 있습니다. 배고파하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모성애는  대단한 것이라고 말이지요. 민망함이나 부끄러움의 시선이 아닌, 어쩌면 모유를 통해 배부름의 만족뿐 아니라 아기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엄마의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내일부터는 산후조리원 거실을 가뿐한 발걸음으로 드나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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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 거실에서 모유를 먹이는 산모들, 이제부터는 가뿐한 발걸음으로 조리원을 드나들어야겠습니다 ^^ (사진은 아내가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