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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발견

레스토랑에서 외식 하자고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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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에 가본 패밀리 레스토랑. 그 이후로는 가보지 못했다. 우측 아기와 함께 있는 우리가족ⓒ 윤태

아이들 때문에 넉다운 된 아내


둘째를 출산한지 한 달 된 아내, 열흘 전 장모님께서 직장에 복귀하시자 아내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장모님 계실때는 젖이 잘 나오게 하기 위해 하루에 다섯 번 이상의 식사를 했지만 지금은 두 끼조차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다.

천방지축 네 살 큰애가 동생을 향해 돌진해오니 늘 긴장을 풀지 못하고 감시해야한다. 아직 목도 못 가누는 아이를 업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바닥에 눕혀놓고 마음대로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다.

밥 먹을 때가 되면 밥상 앞에서 둘째 젖 물림과 동시에 첫째녀석 밥 떠 먹이랴, 아내도 밥 먹으랴 사실 정신이 없다. 아이들 챙기다 보면 아내 밥은 금세 식기 마련이고 그 찬밥이 입에 맞을 리 없다. 게다가 젖을 먹이고 있으면 큰 녀석이 머리를 들이밀고 엄마 품으로 달려들어 육체적으로도 여간 힘든게 아니다.

밤에는 어떤가? 아직 밤낮을 구분하지 못하는 둘째, 밤새 엄마 젖 물고 먹다가 자다가, 소리 지르고 울고.... 엄마는 아기에게 젖을 줘야하니 똑바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밤새 누워있어야하는데 이 자세가 옆구리나 어깨, 허리에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침대면 좀 덜하겠는데 바닥이라 더 그렇다. 한마디로 밤에 편한 잠 거의 못자고 온몸 통증으로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잠 못 깨는 아내, 출근은 나홀로...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는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깨어나지도 못한다. 제대로 못자고 못 먹으니 얼굴은 팍 상한 상태에서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조용히 씻고 우유한잔 마시고 출근 할 때가 많다. 밤에 너무 힘들어 분유를 먹여볼까도 했지만 아내는 분유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모유를 먹이겠다고 한다. (모유의 장점도 알고 있지만 비용을 먼저 생각하는 아내다) 분유를 배불리 먹여놓으면 최대한 6시간 까지는 깨지 않고 엄마나 아기 모두 숙면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퇴근해서 아내 얼굴보면 안쓰럽기 짝이없다. 밤에 아기한테 시달렸으니 낮잠이라도 자면 덜할텐데 두 녀석에 집안 살림까지 하려면 그럴 여유가 없다.

미안한 마음에 어제는 금요일이고 좀 일찍 들어오기도 해서 아내에게 근처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제안했다. 셋이서(같이 사는 아이들 이모) 칼질 한 번 하자고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스테이크좀 먹자고 했다. 예상 소요금액은 약 10만원.

사실 아내와 나는 레스토랑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5천원짜리 설렁탕, 뼈다귀해장국, 김치찌개 등 일반 식당을 선호하지 비싸고 양 적은 레스토랑은 별로다. 물론 맛이야 레스토랑이 좋겠지만 우리 같은 서민은 맛보다는 가격, 질 보다는 양을 따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번엔 꼭 레스토랑에 가고 싶었다. 힘들고 지친 아내를 위해 조금 비싸더라도 말이다. 아내는 비싸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나가고 싶으면 닭갈비나 칼국수 집을 가자고 했다. 나는 그런곳은 담배 연기가 피어올라 아기 한테도 좋지 않으니 모처럼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했다. 옥신각신했다.

외식비 10만원이면 한달 기름값, 두달치 밥값

10만원이면 내 한달 기름값이고 두 달 치 점심값(월수금만 점심을 사 먹으므로) 이라고 아내가 말했다. 나도 알고 있다고, 그런데 모처럼 스테이크 먹으면 어찌 되냐고? 우리집 쓰러지냐고 내가 대꾸하는 가운데 언성이 높아졌다.

이에 아내는 이제 둘째 분유도 같이 먹여야하고 아기 무슨 보험도 들어야하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누구생신, 결혼, 돌잔치....어쩌구 저쩌구 이야기하며 “얼마나 들어가는지 보여주랴?” 하며 책상 서랍을 열어 가게부 같은 걸 보여주려고 하는데, 내가 “됐어. 라면이나 끓여먹자”고 했다.

지금 생활비도 ‘펑크’가 나고 있는 상황에서 비싼 외식은 힘들다는 것이다. 아내의 고집이 이 정도니 어쩔 수 없다. 나는 그저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맛나는 거 먹고 젖 철철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레스토랑에 가자고 한건데....아내의 심정이 이해되고 현실적으로도 알지만 한번쯤 져주고 넘어가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아내가 서랍 열어 가게부 보여주려고 할때 내가 본게 있었다. 바로 ‘❍❍ 캐쉬백’이라는 것이다. 과자나 생활용품 같은 거 사면 ‘50점, 100점’ 이렇게 붙어있는데 그걸 오려서 모으면 포인트가 적립돼 물건도 사고 그런단다. 길거리 지나다가 캐쉬백 안떼고 버린 상품 포장지 있으면 쪼로로 달려가 쪼그려 앉아 그걸 떼는 아내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50원, 100원 모아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아내...그 캐쉬백을 보자 아내의 걱정과 우려가 머릿속에 꽂혔다. 레스토랑 제안은 너무 무리였다는 것을...

그날 저녁 식구들을 위해 내가 라면을 끓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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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우유 등 식품을 사면 캐쉬백이 있다. 그걸 일일히 모아 사용하며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아내.ⓒ 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