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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곰 꼬마가 청계산에 갔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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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성격이 온순하고 부끄러움이 많은데 인간들은 왜 나를 그렇게 안보는 거야?"





안녕, 

나는 이번에 일약 스타돔에 오른 말레이곰 꼬마야. 이번 프로젝트가 싱겁게 ‘9일 천하’로 끝나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깨달은 게 참 많아. 사실 이번에 내가 편안하게 해주는 대공원을 나섰던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

지난 6월 내 형님뻘인 반달가슴곰 두 형님이 올무와 농약 먹고 돌아가신 것에 한이 맺혀 그 한을 풀어주려고 험한 길을 나섰던 거야. 너희 인간들이 잘 알고 있듯 나는 열대 우림이 고향이라 지금처럼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한국의 청계산에서 돌아가신 형님의 펴지 못한 꿈을 펼치기란 정말 쉽지 않았어. 뼈를 깎는 듯한 혹독한 추위를 감수하고도 청계산에 올라갔던 걸 보면 내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겠지?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참 재밌는 현상을 많이 봤어. 나는 원래 성격이 온순하고 부끄러움도 많아서 인기척만 들리면 숨어버리거든. 소문을 들어보니 고작 40kg의 작은 체구인 나를 두려워하는 인간들도 많더라. 혹시 배가 고프면 인간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틀렸어. 나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인간을 해치지는 않아. 필요하면 산속의 칡뿌리를 캐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해치지 않아. 오히려 인간들이 나를 겁먹게하고 있지. 우리 형님들인 반달가슴곰이 인간에게 당했던 것처럼 말야. 대공원 있을때부터 얼핏 들어 알고 있지만 인간들은 정말 무서워. 배고픈 자가 가진자들을 빼앗아 먹는 일은 물론 많이 가진 인간들이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못된 짓 하는 것을 대공원 우리 안에서 다 듣고 보고 있었거든. 그래서 사실 인간세계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거야.

헬기가 뜨고 수천명의 인간들과 개들이 나를 찾는 모습을 나뭇잎속에 숨어서 물끄러미 보고 있었어. 내가 잠깐 모습을 드러내보이면 어깨에 뭔가를 이고 불빛을 번쩍거리면서 뛰어오는 인간들도 볼 수 있었지. 어찌나 겁이 나던지 정말 혼났어. 인간들의 관심이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말이야.

전에 어떤 인간이 행방불명 됐을 때 수십명의 또 다른 인간들이 막대기로 산을 쑤시며 인간을 찾는 모습을 본적이 있어. 어찌 생각해보면 인간보다 내가 더 대단한 존재 같아. 뜨거운 관심을 주는 건 좋지만 심하면 부담돼. 나를 찾는데 그렇게 힘쓰지 말고 ‘인간 꼬마’ 찾는데 더 많은 노력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어. 솔직한 심정이야.

그리고 한편으론 청계산 주변 상인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어. 나 때문에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고? 그래서 한가지 방법을 가르쳐줄게. 내 동상을 몇 개 만들어서 청계산 인근에 이곳저곳 세워두면 사람들이 아마 많이 찾아올거야. 이정도면 어느정도 보상이 되겠지?

이제는 좀 쉬어야겠어. 우선 대공원에서 몸을 만들고 내년이나 내후년에 다시한번 자연으로의 여행을 떠날 생각이야. 이번엔 혼자가지 않을거야. 예쁜 아내와 같이 가서 예쁜 아들 딸 낳아 청계산에서 살거야. 우리 형님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꼭 이루고 말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폭발적인 관심은 사양이야. 절대 사양!

그리고 나는 너희 인간들을 잘 알아. 어제 내가 인간들에게 잡혔을 때 뉴스 속보로까지 내 보내더니 오늘부터는 아예 아무런 이야기도 없네. 이거 너무한거 아냐? 대공원 있을 때 종종 인간들을 가리켜 ‘냄비’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왜 인간이 냄비인지 전혀 그 뜻을 이해못했어. 인간하고 냄비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어.

9일천하로 끝난 꿈이지만 다음번엔 최대한 ‘900일 천하’로 세상을 다시한번 깜짝 놀래킬거야. 하지만 인간들아 이거 한가지는 기억해두렴. 다음번에 900일 천하가 성공하면 그거 가지고 생태 영화니 곰 다큐멘터리니 하면서 나를 돈벌이로 만들지마. 후레쉬 터트리고 뜨거운 조명 비추면서 자꾸 나를 추근대면 정말 스트레스 받거든.

그래서 다음번엔 쑥과 마늘을 한 자루 짊어지고 여행 떠나 그거 먹으면서 새로운 인간 세상을 만들어볼 계획도 갖고 있어. 지금 인간세상은 너무 썩어서 갈아치울 필요가 있거든.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이야기할게.

앞으로는 양은 냄비보다는 돌로된 냄비를 사용해봐. 돌솥밥 해먹는 그릇말이야. 한참동안이나 그 보글보글함과 따끈함이 식지 않는 돌냄비말야. 금방 끓고 금방 식어버리니깐 맛도 없고 너희들이 너무 가벼워보여 안타까워서 해주는 진정한 마지막 충고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