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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조각 모음

문학은 없고 영업만 있었던 문예 신인상

9년전 등단한 문학잡지, 내다 버리다

저는 오늘 제 작품(詩)이 담긴 월간 문학잡지 20여권을 폐지 수집상에게 줘버렸습니다. 2000년 봄쯤에 발행된 제 작품이 실린 문학잡지를요. 내일 모래 위층으로 이사하는데 짐 정리하다 보니 그 문학잡지가 눈에 많이 띄더군요. 9년동안 세 번 이사 하면서 그것들을 계속 가지고 다녔습니다. 제가 등단한 문학잡지를요. 그런데 오늘 그것들을 단돈 2천원에 폐지 고물상에 넘겼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후련할 수 없습니다.

지난 99년 12월 경에 첫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제가 들어간 회사가 재대로 된 곳이 아니어서 급여는 밀릴대로 밀리고 기약도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한 문학잡지를 소개해줬고 제 작품을 한번 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학때 써 놓은 시 작품을 정리해 제 프로필과 함께 그 문학잡지 어느 분에게 건넸고 심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연락이 왔고 신인상에 당선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선소감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성스럽게 소감을 적어 보냈습니다.

세상에, 내가 월간 문학잡지 신인상에 당선되고 내 시가 전국 서점에 나간다니....

신인상 당선, 책 수백권 사서 지인에게 줘라?

그런데 참 고민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습니다. 문학잡지 측에서 그 문학잡지를 대량으로 구매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200~300부씩 구입하시는 분들도 있고 당선됐으니 출판기념회도 해야하고 지인들에게 나눠줘야 하므로 최소 100권 정도는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권당 1만원이었고 100권이면 100만원이었습니다. 출판기념회와 지인들에게 나눠줘야하고...당연한 수순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수중에 천원짜리 몇장도 없을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할때라 책을 구입한다는 건 상상할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등단한 문학잡지를 포기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아버지께 이건 꼭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므로 최소 50권은 구매해야한다고 설득해 50만원 주고 제가 등단한 문학잡지 2000년 몇월호 50권을 구입했습니다. 별도로 시상식은 없었고 신인상 패를 만든다며 5만원을 보내달라고 했으나 도저히 여의치 않아 보내주지 못했습니다. 신인상 상패까지 자비로 만들어야하는...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2000년, 01년, 02년, 03년.....2009년까지. 50권 중에 20여권은 지인들에게 나눠줬고 20여권은 이사할때마다 가지고 다녔습니다.

당시 출판, 문학은 없고 영업만 있었다

그 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는 알았습니다. 2000년 당시 제가 얼마나 순진하고 혹은 순수했다는 것을 말이죠. 문학을 해야겠다는 순수함으로 덤비고 도전한 것이 결국은 출판계의 잇속이었다는 것을.... 자비로 출판을 해서 자비로 책을 사들여 지인들에게 나눠주는건 뭐라할수 없지만 신인상 이라는 ‘풍선’ 같은 바람을 넣어 대량으로 책을 구입하게 하는 일부 출판계의 현실임을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됐습니다.

2000년도 당시에는 자랑이자 나의 큰 이력이었던 그 문학잡지의 ‘이상한 등단’은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오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책을 받아보니까 제가 적은 당선 소감 제목(한글 14포인트 크기)에 오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인쇄됐더군요.그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사회 경험이 전혀 없었고 제가 너무 순진했습니다.  

모레 이사를 앞두고 오늘 그 문학잡지 20여권을 폐지상에 주고 이제는 이력에서 빼 버린, 아니 부끄러운 과거의 오점으로 남게 됐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와서 그 당시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문학은 없고 영업만 있었다 ’ 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폐지 수집상에 2천원 주고 그 문학잡지 20여권을 넘겼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편할수 없군요. 폐지로 들어가기 전 기념촬영(?)해 뒀습니다. 그래도 9년을 함께 해 온 잡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