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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조각 모음

<워낭소리> 주인공 할아버지가 걱정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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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혹은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를 그저 감상적으로만 관람할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대통령도 관람했다는 다큐 영화 <워낭소리>
내 어릴적 이야기 고스란히 담아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독립영화, 아니 다큐멘터리 드라마 <워낭소리>를 드디어 관람했습니다. 독립영화로는 최초로 대통령도 관람했다는 소식입니다. 조만간 관객 1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아니,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언론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인간극장>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화려한 조명도 아무런 특수효과나 기법도 없이 영화촬영용 카메라가 아닌 조그만 무비카메라로 촬영된 <워낭소리>. 소와 함께 평생을 들에서 살아온 여든이 넘은 주인공 할아버지 내외와 평균 수명이 15년인 암소가 40세까지 일을 하며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진솔하게 잘 담은 다큐멘터리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소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할아버지의 삶에 완전 공감이 가더군요. 감상적으로 그냥 공감하는건 아니구요. 영화와 똑같은 상황을 저도 겪으며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소와 함께 9남매를 출가시켰고 저희는 6남매가 소 덕분에 잘 자랄수 있었습니다.

저도 국민학교 고학년때까지 영화에서처럼 소달구지 타고 다니며 곡식 거두고 두엄 냈으며 밭 갈고 논 써레질 등 소를 농사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하며 생활해왔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일을 하던 일소가 국민학교 때 노환으로 죽는 경우도 봤습니다. 죽기 직전 결코 어리지 않은 자신의 새끼를 혀로 핥고 눈물을 흘리더니 쓰러져 죽더군요. 영화속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상적으로 이 영화를 봤다기보다는 저 어릴적 경험담을 다시 재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겁니다.

상영관을 찾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우리나라의 독립영화 현실에 대한 문제점과 비판의 목소리는 이번 글에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통령이 관람을 했다고 하니 앞으로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바람이 있습니다. 정부 및 관련업계에서 풀어가야 할 숙제겠지요.

생명의 소중함과 가족애, 영화속 암소는 이미 할아버지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이니까요. 30년을 함께 했으면 사람 못지 않게 정이드는 법이지요. 여하튼 생명의 소중함과 가족애 그리고 농촌과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 한폭의 수채와 같은 영감을 받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어린아이들과 함께 봐도 가슴깊이 뭔가 남을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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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수익금 10% 할아버지에게 '선물', 돈 아닌 '물건'으로??
산골소녀 영자씨, <맨발의 기봉이> 전철 밟지 않을까 우려

그런데 한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영화가 대박이 나면서 주인공 할아버지가 내외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됐는데요.

물론 따로 계약을 한 것도 아니라 제작진 측에서도 ‘선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과거 매체의 영향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인식한 탓인지 돈이 아닌 ‘물건’을 ‘선물’로 준다고 하지만 결국은 돈입니다.

과거 ‘산골소녀 영자씨’는 <인간극장> 출연 이후 휴대폰 광고까지 출연해 세상에 나왔지만 이로 인해 부친이 살해당하고 영자씨는 절로 들어가 스님이 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또 영화 <맨발의 기봉이> 실제 주인공 엄기봉씨도 후원금을 둘러싸고 어머니와 생이별 하는 등 <PD수첩>의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돈 앞에서는 어떤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모릅니다. 그 당사자들이 가족, 친지라고 해도 말이지요. 맨발의 기봉이에서 특히 그 부분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또 방송사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대통령이 이 영화를 봤니 어쩌니 하면서 이 주인공을 소재로 방송을 준비하는 프로그램들이 조만간 수두룩해질 겁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죠. 특히 이 할아버지의 건강상태가 무척 안좋아보이던데요. 계속되는 두통과 발가락 관절이 끊어지고...의사도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고 농사일을 쉬는게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할 정도이니 말이죠. 제작진들이 줄곧 찾아와 방송출연을 제의할게 뻔한 일입니다.

영화 제작사도 이렇게 흥행할 줄을 몰랐을겁니다.

흥행에 대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시점입니다. 이 우려와 기우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까요? 아니면 어떤 제도적 장치를 통해 막을 순 없는지요?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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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친구처럼 자라왔지요. 어려부서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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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옷에 묻은 소똥. 그렇게 평생을 소와 함께 살아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