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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실동화

[사실동화] 3. 속 깊은 친구

3. 속 깊은 친구


오늘은 승호네 학교가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승호 누나가 엄마 대신 승호의 김밥을 싸고 있었다. 그러나 승호는 소풍 가는 날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소풍날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승호는 늘 생각했다. 변변한 김밥 한 줄 싸가지 못하는 자신이 창피하기 때문이었다.


ꡒ승호야,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어. 콜라 사가는 거 잊지 말고. 산에 올라가면 더 비싸니까 미리 사 가지고 올라가. 알았지?ꡓ

ꡒ....ꡓ


승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몇 푼 안 되는 소풍비 때문이었다. 엄마가 아침에 일찍 논에 나가면서 쥐어준 3000원이 소풍 비의 전부였다. 게다가 김밥에는 햄이나 소시지, 게맛살은 없고 시금치와 단무지만 들어 있었다. 승호네는 가정 형편 상 김밥 재료를 사기 위해 읍내까지 갈 여유가 안됐던 것이다.


ꡒ얘, 승호야 이거 빼 놨어.ꡓ


시무룩하게 나가려는데 누나는 까만 비닐봉투에 든 것을 건네줬다. 찐 밤이었다. 이 밖에 가방 안에는 소금으로 우려낸 말뚝 감, 찐 고구마가 들어 있었다. 승호는 소풍날 용돈 대신 밤이나 감 등 집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먹을 것을 준비해 싸가곤 했다.


ꡒ승호야. 가방 잃어버리지 말고 잘 다녀와.ꡓ


사실 승호는 가방도 불만이었다. 엄마가 시장이나 외갓집에 갈 때 가지고 다니는 손잡이 달린 작은 가방이 승호의 소풍 가방인데 할머니들이 주로 들고 다니는 가방이라 승호는 소풍갈 때마다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터벅터벅 걸어오는데 명자네 집 담벼락 모퉁이에서 수인이가 승호를 불러 세웠다.


ꡒ승호야, 같이 가자.ꡓ

ꡒ수인이구나.ꡓ

ꡒ야, 그런데 너 소풍날 아침부터 표정이 왜 그러냐?ꡓ

ꡒ어, 그....그냥.ꡓ

ꡒ짜아식.ꡓ


수인이는 승호의 오른쪽 등을 살짝 내려치고는 어깨동무를 한 다음 씨익 웃었다. 수인이는 뭔가를 눈치 챈 듯한 표정이었다. 


옥봉산으로 가는 소풍 길은 아름다웠다. 날다람쥐가 밤이나 도토리를 물고 나무를 오르내리는 풍경도 보였고 불을 질러 놓은 듯한 형형색색의 단풍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승호는 이런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기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점심시간이 되었다.


ꡒ자, 점심시간은 1시까지입니다. 멀리 가는 사람 없도록....ꡓ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친구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승호는 이 순간이 너무 싫었다. 형편없는 자신의 김밥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이 가져온 김밥을 안 먹으면 어쩌나 하고 승호는 내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일곱 명의 친구들이 모여 앉아 김밥을 꺼내 한데 놓았다. 처음에는 어느 김밥이 승호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승호의 김밥을 한 번 집어먹은 친구들은 다시는 손을 대지 않았다. 승호 역시 애써 자신의 김밥을 먹고 있었지만 역시 맛이 없었다. 그럴만한 것이 기본적으로 소시지나 햄 이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수인이가 승호의 김밥을 집중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김밥을 승호 앞으로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ꡒ야, 수인아 천천히 먹어라 임마. 체하겠다.ꡓ


승호는 급하게 김밥을 먹는 수인이의 등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달랬다. 그건 왠지 모를 고마움의 표시였다. 바로 그때 수인이의 나무젓가락에 쥐어져 있던 승호의 김밥이 잔디위로 굴렀다. 그러자 수인이는 손으로 김밥을 주워들고 ꡒ훅ꡓ 하고 불더니 먹어버렸다. 다른 친구들이 일제히 수인이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수인이는 태연하게 말을 꺼내며 씩 웃었다.


ꡒ야야, 먹어도 안 죽어. 하여간 깔끔한 척 하기는...ꡓ


친구 승호를 위해 수인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땅에 떨어진 김밥을 주워 먹은 것이다.


김밥을 먹은 다음에 친구들은 저마다 간식을 꺼내들었다. 빠다코코넛비스킷, 초코파이 등 주로 과자였다. 그러나 승호는 아까부터 콜라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가방 속에 있는 찐 밤, 찐 고구마, 우린 감은 꺼내지도 못하고 우쭐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수인이가 승호를 향해 물었다.


ꡒ야, 너 그 안에 있는 거 뭐냐?ꡓ ꡒ이리 내 봐 임마.ꡓ

ꡒ어...밤하고 고구마...ꡓ

ꡒ야, 이 자식이 맛있는 거는 지가 다 먹으려고 그러네. 이리 줘봐.ꡓ


수인이는 승호의 가방 속에서 찐 밤, 찐 고구마 등이 들어 있는 봉지를 꺼내들며 대신 자기 가방 속에 들어 있던 과자를 꺼내 승호에게 건네줬다.


ꡒ야, 나 요즘 충치 생겨서 단 과자는 못 먹겠더라. 엄마가 어제 사 오셔서 가지고 오긴 했는데... 아, 잘 됐다. 승호 니가 이거 다 먹어라. 나는 우린 감하고 밤이나 먹어야겠다.ꡓ


수인이는 승호 가방에서 꺼낸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우린 감 껍질은 벗기지도 않고 잘도 씹어 먹었다. 승호는 오린 라면봉지를 씌워 노란 고무줄로 봉해놨던 병콜라 마개를 열어 수인에게 건네줬다. 콜라를 한 모금 마신 수인이가 또 입을 열었다.


ꡒ임마, 그리고 소풍이 왜 소풍이냐? 오늘은 먹고 재밌게 놀라고 있는 날이야. 가지고 온 거는 다 먹고 내려가야지. 올라올 때 힘들지도 않데? 하여간 뭘 모른다니까.”


결국 승호가 싸온 음식은 수인이가 모두 먹어치웠다.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 친구들은 산을 내려왔다. 학교 근처에 다다랐을 쯤 수인이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집쪽으로 뛰어갔다. 승호는 수인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걸음을 되돌려 문방구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2500원짜리 태권브이 3단 변신 로봇을 샀다. 혹시 소풍비 3000원 받았다는 사실을 수인이가 알아차릴까봐 일부러 수인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문방구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날 저녁밥을 먹는데 누나가 승호에게 물었다.


ꡒ승호야, 오늘 우린감 안 떫데?ꡒ너 가고 나서 몇 개 먹어보니깐 제대로 안 우려진 게 많더라ꡓ

ꡒ어? ꡒ어.. 괜찮던데...ꡓ


승호는 그 감을 수인이가 다 먹었다고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먹을 만 했다고 누나한테 거짓말로 얼버무렸다. 낮에 수인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떠올리며 왜 집에 있는 감만 제대로 안 우려졌는지 승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승호는 수인네 집 앞에서 수인을 불렀다.


ꡒ수인아, 학교 가자.ꡓ


그런데 수인이 대신 수인이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며 대문 밖으로 나왔다.


ꡒ승호 왔구나. 우리 수인이가 어제 저녁부터 배탈이 나서 꼼짝을 못하고 있거든.ꡓ

ꡒ예? 배탈이라고요?ꡓ

ꡒ그래, 어제 소풍가서 뭘 그렇게 많이 먹었는지 밤새 설사하고 토하고.....죽는 줄 알았어.ꡓ

ꡒ....ꡓ


승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ꡒ오늘은 학교에 못 갈 것 같구나. 그래서 말인데 승호 네가 선생님께 말씀드려줄래?ꡓ

ꡒ네, 그럴게요. 안녕히 계세요.ꡓ


승호는 얼굴도 못 들고 모기 만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ꡒ아이구 미련한 놈. 감이 떫으면 먹지 말지....바보 같은 놈.ꡓ


승호는 떫은 감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맛있게 먹었던 수인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져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