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독서신문에 동시 쓰는 코너가 있어 홈페이지에 동시를 좀 투고하라고 수업하는 아이들에게 일렀더니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 시 한편을 올렸다. <내 일기장>이라는 시인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떤 자신의 애로사항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봤다.
제목 : 내 일기장
오늘 일기 썼니?
아뇨, 오늘은 못썼어요.
어제일기는?
아, 그땐 까먹고 못했어요.
그제 일기는?
아, 그땐 바빠서 못했어요.
선생님께 "선생님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요."
라는 말이 나오려고
하지만,
혼날까봐
생각없이
반성없이
선생님께
보여주기 싫어
핑계를 댄다
하루하루 비어가는
나의 깨끗한
일기장
참 솔직 담백하게 써 줬다. 선생님께 일기를 보여주기 싫어서 또 안쓰면 혼날까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5학년 학생. 특히 맨 끝에 빼곡히 채워가는게 아니라 하루하루 비어가는 나의 깨끗한 일기장(?) 이라는 역설적인, 반어적인 표현까지 썼다.
이 시를 보고 나서 초등학교 1~6학년까지 총 30여명의 남녀 학생들에게 학교 선생님이 일기검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다. 저학년(1~2학년)은 대부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 반면 4학년 이상의 고학년의 경우 검사를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쓰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못쓴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요즘 아이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조숙하다 보니 사생활에 대한 개념이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학교 제출하는 일기 따로, 집에서 쓰는 일기 따로??
특히 글쓰기를 좋아하는 5학년의 한 친구는 학교에 내는 일기 따로, 집에서 쓰는 일기장을 따로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일기쓰기가 숙제이니 안해갈수도 없고 솔직하게 쓰자니 자신의 마음을 들켜버리는 것 같고....
일기를 쓰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학생 개기인에게는 문장력, 글쓰기 향상과 정서함양, 지난 추억을 간직할 수 있고 선생님 입장에서는 학생의 친구, 가정, 학습 등 일기를 통해 어떤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대화의 창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런 장점이 있는 반면 어린이 인권 침해라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는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교육부에 일기검사를 개선하라는 권고를 내린바 있다. 이때도 일기장 검사가 크게 논란이 됐었다.
5학년 아이가 쓴 <내 일기장> 이라는 시를 읽고 나서 선생님께 일기검사를 꼭 받아야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론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일기장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수 있다.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어린이 인권, 사생활 침해라고 보시는지, 아이를 파악하기 위한 유익한 소통의 매개체라고 보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