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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동영상] 그녀와의 아주 '특별한 동행'

 전신마비 구필(口筆)화가▪시인-입에 붓을 물고 글씨나 그림- 한미순 님을 알게 된건 지난 2004년 11월 초로 기억한다. 조그만 잡지회사(지금은 폐간)에 다닐 때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노란 은행잎이 지천으로 깔리고 가랑비가 내리던 2004년 11월 초의 어느날. 한미순님을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4년 후. 2008년 7월 26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4년만에 송파구 거여동 구필화가 한미순님 댁을 찾았다. 4년전과 달라진게 하나도 없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도 그대로였고, 입에 물고 타이핑하는 막대기도 4년전 그대로였다.

주로 누워 계시고 그림 그리거나 컴퓨터 할때는 휠체어에 앉으신다. 일요일마다 휠체어로 5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 다녀오는데 유일한 외출이다. 사실 외출이라고 할 것도 없다. 교회 가는 길에 특별한 풍경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파격적 부탁' "한강 보고 싶다"

그런데 그녀가 ‘파격적인 부탁’을 했다. 한강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티즈에 어른 넷, 아이 둘, 휠체어까지 싣고 가야하는데, 걱정이 됐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 이러한 외출은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하는 귀한 것이다. 목사님 말고 찾아오는 이도 명절때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족의 방문이 그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약한 비가 날리다가 굵어지기도 하고...무작정 강쪽을 향해 달렸다. 코너를 돌때는 조심조심했다. 드디어 한강 도착. 1년에 한두번 정도 그것도 운이 좋아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달리다가 멀리서나마 봐왔던 한강물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이야, 그녀는 내내 흡족해했다.

돌아오는 길에 냉면집에서 외식도 했다. 올해 들어 두 번째 하는 외식이다. 그만큼 밖에 나올 일이 없었다. 도우미 아주머니 혼자서는 휠체어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애로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이별했다. 그녀는 손을 흔들 수 없었으므로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작별을 대신했다.

5시간에 걸친 그녀와의 ‘특별한 동행’이 끝났다.

1984년 10월 16일. 서른 살 나이에 결혼을 한 달 앞두고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그녀.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개척해나갔다. 입에 봉과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나갔다. 시집도 내고 자전 에세이집도 출간하고 언론의 관심도 받았었다. 젊었을 때 한때.

지금은 그런 관심 밖에서 묵묵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나갈 뿐이지만. 그래도 그녀의 정열과 열정과 희망은 언제나 솟구치다 있다. 4년만에 뵜는데도 그것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친구이다. 이메일을 주고 받을 친구 말이다. 물론 여건상 자주 답장을 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가능한 한 최대한 답장을 해주리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세상 돌아가는 풍경이 필요하다.  TV에서 한번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산, 바다, 나무, 단풍, 계곡 등등등 누군가 직접 촬영한 사진이 그녀에게는 필요하다. 직접 찾아다닐 수 없으니 누군가 보내준 사진을 출력해 그것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주로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아름다운 사연을, 정겨운 그림을 나눌 분들이 어디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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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메일 친구가 이메일로 보낸 예쁜 아기 사진을 프린트로 출력했다. 어릴적 사진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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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을 보고 그녀는 입으로 똑같이 그렸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